제주 4·3 사건 유적

화해와 상생의 상징, 하귀리의 영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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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건 당시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도 서로가 등을 돌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하귀리가 바로 그런 마을 중 하나에요. 마을 사람들은 밤에는 무장대를 도와주고 낮에는 토벌대에 협조했어요. 무장대에 의해 죽는 사람도 생기고, 많은 이들이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했지요.


이런 상황이 되니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갈등이 생겼어요. 4·3 사건이 끝난 이후 이 마을은 무장대를 도운 사람이 많다며 ‘빨갱이 마을’로 불렸어요. 마을 사람들 중에는 자신도 빨갱이 가족으로 몰릴까봐 두려움에 떨었고, 무장대와 관련 있던 사람들을 멀리했어요.


결국 하귀리가 동귀리와 귀일리로 나뉘어졌어요. 그렇게 나뉘어져 서로를 멀리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내왔어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이들은 모두 피해자잖아요. 서로를 멀리할 이유가 없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 사람들도 이를 깨달아 서로가 다시 하나 되려는 노력을 했어요. 마을에 영모원이라는 추모 공간도 만들었지요. 영모원에 있는 4·3 희생자 위령비에는 다음 내용이 적혀 있어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이제야 비로소 지극한 슬픔의 땅에

지극한 눈물로 지극한 화해의 말을 새기나니,

지난 50여 년이 길고 한스러워도 앞으로 올 날들이

더 길고 밝을 것을 믿기로 하자.

그러니 이 돌 앞에서 더 이상 원도 한도 말하지 말자.

다만 섬나라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한번쯤 여기 와서 고개를 숙이라.


- 비문 내용 중 일부 -


이 비는 제주의 민간인뿐만 아니라, 무장대와 토벌대 모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지요.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마음을 담아 비를 세우고, 화해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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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귀리 영모원과 영모원의 4·3 희생자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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