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 대왕릉비는 당시 동아시아 강국으로서 고구려의 위상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제와 신라의 상황, 왜(일본)와의 관계 등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에요.그런데, 비석에 기록된 일부 내용을 두고 우리나라와 일본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한 적이 있어요. 이는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로 확대되어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뜨거운 역사 분쟁으로 이어졌어요. 이는 광개토 대왕릉비의 비문에 있는 20여 자 정도 되는 짧은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주장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아요.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한자로 된 이 문장을 일본 학자들은 ‘왜(일본)가 신묘년(391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격파하여 신민(신하와 백성)으로 삼았다.’라고 풀이하였어요. 그러나 우리나라 학자들은 다르게 해석을 하였어요. 광개토 대왕릉비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념하는 내용이므로 백제와 신라를 격파한 주체는 당연히 고구려라고 해석을 하였지요.한편, 북한의 학자들은 고구려가 왜를 격퇴하였으며, 백제가 왜와 연결하여 신라를 침략하여 신하와 백성으로 삼았다고 보았어요. 즉 백제가 친하게 지내던 왜를 끌어들여 신라를 침략하였고, 이후 고구려가 백제와 왜를 격퇴했다는 내용이지요.반면, 재일(在日) 역사학자 이진희는 비가 일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