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6월 10일, 신민회 회원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드디어 신흥 강습소가 세워졌어요. ‘신흥’은 신민회의 ‘신(新)’자와 다시 나라를 구하는 싸움이라는 의미의 ‘흥(興)’자를 합친 것이에요. 독립군을 길러내기 위한 학교인데, 왜 무관 학교라는 이름대신 강습소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중국 사람들의 눈초리와 일본의 감시 때문이었어요.중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남의 나라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에 와서 군사 훈련을 하고 군대를 운영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죠. 무엇보다도 독립군의 활동에 부담을 느낀 일본은 늘 중국에 우리 독립군을 탄압할 것을 주장하였고, 실제로 군대를 보내 우리 독립군을 공격하기까지 했거든요.비록 빈 집 옥수수 창고를 빌려 세워진 신흥 강습소였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열기는 정말 뜨거웠지요. 수업은 사격, 전투 훈련, 전술학, 무기학 등 군사적인 과목 외에도 역사, 지리, 산수, 화학, 도덕, 독서, 한문, 체조, 중국어 등 정말 다양했어요. 독립군을 길러내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지만 그 못지않게 민족의식을 기르는 수업도 중요시했어요.신흥 강습소의 군사 훈련은 실제 전투처럼 치열하게 이루어졌다고 해요. 중국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산속 공터에서 학생들은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았어요. 이때 학생들을 가르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