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 우리 국민들은 새로운 정부를 세우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어요. 하지만 그 희망은 오래 가지 못했어요.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는 가운데에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통치하기 시작했거든요. 또 미국과 소련 정부 수립을 놓고 생각이 나뉘었지요.한반도 남쪽을 미군이 통치하는 미군정이 실시되자 제주도민들은 이제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미군정은 조선 총독부의 경찰 기구를 그대로 두고 친일파 경찰들을 통치에 이용했어요. 그러자 제주도민들의 실망감은 커졌지요. 게다가 극심한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하고, 전염병까지 돌아 제주도민들은 힘겨운 생활을 해야 했어요.1947년 3월 1일, 제주의 북초등학교에서 3·1절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어요. 제주도민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어요.“3·1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 국가를 세우자!”“친일 경찰 물러가라! 식량 문제는 우리 손으로!”평화롭게 진행된 거리 행진이 끝나갈 무렵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어린 아이가 경찰의 말발굽에 치여 넘어졌거든요. 그런데 경찰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가버렸어요. 화가 난 제주도민들은 경찰서로 몰려가 거세가 항의했어요. 경찰은 이를 폭동으로 간주했고, 제주 중심지에 있는 관덕정 부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