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너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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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마을이 있어요. 바로 제주 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조천읍의 북촌리 마을이에요. 당시 이 마을 남자들이 거의 죽음을 당해 ‘무남촌’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어려움 속에서도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알린 『순이 삼촌』이란 소설에서도 북촌리 마을의 비극을 다루고 있지요. 북촌리에는 당시의 비극을 알려주는 너븐숭이 기념관이 있어요. 너븐숭이는 ‘넓은 돌밭’을 뜻하는 말이에요.
도대체 이 마을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너븐숭이 근방에서 행군하던 군인 2명이 무장대의 습격을 받아 죽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러자 군인과 경찰 토벌대가 북촌리로 들이닥쳤어요.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학교 운동장으로 모이게 한 뒤 마을에 불을 질렀어요. 운동장에 모인 마을 사람들을 향해 토벌대가 소리쳤어요.
“군인과 경찰 가족은 서쪽으로 나와!”
그런 뒤 나머지 사람들을 학교 주변의 당팟과 옴팡밭(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으로 끌고 가 총질을 해댔어요.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총소리는 끊이질 않았어요. 그날 하루 3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이 벌어졌어요. 밭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고, 시체들이 널려 있는 모습이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모습과 같았다고 해요.
북촌리 마을은 제삿날이 거의 똑같아요.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같은 날 죽었거든요. 매년 1월 16일이 되면 합동 제사를 지내며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혼을 날래고 있어요.
너븐숭이 4·3 기념관 옆에는 마을 사람들의 혼을 달래는 위령탑이 서 있어요. 작은 애기무덤도 몇 기 남아있어요. 추모객들이 올려놓은 애기무덤의 장난감과 인형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더욱 뭉클해진답니다.
①너븐숭이 4·3 기념관 ②북촌리 위령비
③학살의 현장인 북촌초등학교에 세워진 비석 ④너븐숭이의 애기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