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일본과 무역을 하기 위해 부산포, 염포(울산), 제포(진해) 세 곳(삼포)에 왜관을 두었어요. 하지만 삼포의 왜관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문을 닫게 되었지요. 7년간에 걸친 전쟁이 끝나고 조선이 일본과 교역을 재개하면서 부산에 왜관이 다시 설치되었어요. 절영도 왜관과 두모포 왜관을 거쳐 최종적으로 초량에 왜관이 설치되었지요. 약 200년 동안 부산에는 왜관이 있었던 거예요.초량 왜관은 용두산 공원 일대 10만여 평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있었어요. 왜관에는 일본 사절단이나 관리, 상인 등이 머물렀어요. 쓰시마에서 온 약 400~500명이 왜관에 머물며 지냈다고 해요.왜관에서는 조선과 일본 두 나라 사이에 외교와 무역이 이루어졌어요. 일본 상인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비단과 조선의 인삼을 사 갔고, 일본의 은이 조선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지요.동남아시아에서 들여온 물소뿔, 후추, 백반 등도 일본 상인에 의해 조선에 수입되었어요. 왜관에서는 문화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어요. 두 나라 문인들이 만나 글을 짓고, 화가들은 그림을 그려 나누기도 했어요. 왜관을 통해 일본 음식을 비롯한 여러 문화가 전해졌고, 반대로 조선의 풍습이 일본에 전해지기도 했어요.초량 왜관 전경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