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무장 투쟁의 씨앗이 된 신흥 무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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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기념관(서울 종로구)
“선생님! 저희들은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일본군으로 근무하다 탈출해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저희를 신흥 무관 학교에 받아주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두 분이 우리 학교의 교사가 되어주신다면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1919년 3‧1 운동 소식을 들은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일본군 장교 김경천과 지청천은 앞날이 보장된 일본군을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 탈출했어요. 그리고 먼 길을 돌아 만주 지역에 있는 신흥 무관 학교로 찾아갔어요. 왜 이들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신흥 무관 학교까지 찾아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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