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종

스스로를 황제라 하고, 노비안검법을 실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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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의욕이 강했던 광종이었지만 처음에는 발톱을 숨길 수밖에 없었어요. 주변 호족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거든요. 하지만 왕위에 오른 지 7년이 지나자 드디어 광종은 칼을 뽑아 들었어요. 이제는 뜻을 펼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거죠.


비교적 고분고분하던 광종이 본 모습을 드러내자 호족들은 깜짝 놀랐어요. 움츠리고 있던 발톱을 빼든 독수리와 같았거든요.


“앞으로 고려는 우리만의 연호(왕이 다스린 시기를 표시하기 위한 칭호)를 사용하겠소.”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개경(개성)은 황제의 도읍인 황도, 서경(평양)은 서도라 할 것이오.”


광종은 이러한 정책들을 통해 국가 체제를 정비하려고 했어요. 중국 후주에 사신을 보내는 등 활발한 교류를 했고요.


“무엇보다 왕권을 강화하려면 호족들을 눌러야겠는데...

옳지, 호족들이 억지로 노비로 만든 사람들을 풀어주게 해야겠어.”

광종은 전국의 노비를 조사하도록 했어요. 원래 양인이었다 불법적으로 노비가 된 사람들을 다시 양인으로 해방시켜주는 노비안검법을 실시했지요. 노비가 양인이 되면 세금도 늘고 호족들이 부리던 노비도, 군사도 줄어드니, 그거야말로 일석이조였죠.


광종의 과감한 정책에 호족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 없었지요. 광종이 뜻을 절대 굽히지 않았거든요. 공신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차츰 왕권은 강해지고 있었고요. 그러는 사이 노비안검법 실시로 호족들의 기반은 더욱 약해져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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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안검법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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