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

실용의 중요성을 깨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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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은 1731년(영조 7년) 충청도 천안의 수촌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홍대용의 집안은 당시 권세 있는 가문에 속해 있어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자랐어요.


열두 살이 되던 해 홍대용은 서원에 들어갔어요. 홍대용은 서원에서 존경하는 스승 밑에서 열심히 학문을 익혔어요.


홍대용은 명이 망한 뒤에 조선이 세상의 중심이자 중국의 문명을 계승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백성들의 삶이 점차 비참해지는 것을 보고서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경전 문구만 외운다고 나라가 강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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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고민하는 홍대용




학문이 깊어짐에도 의구심을 풀지 못한 홍대용의 마음은 답답했어요. 홍대용은 호기심이 많았고 생각이 자유로웠지요. 그런 홍대용에게 더 넓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했요.


“백성과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면, 세상에 관심 두지 못할 것은 없다. 그것이 선비의 길이다.”


‘참된 학문을 하는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래 의문을 가져야 해! 호기심과 의문이야말로 학문의 시작이야!’

홍대용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기를 즐겼어요. 뿐만 아니라 관찰하고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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