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이념을 담은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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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옛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떠나 새로운 도읍지를 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하들에게 전국의 명당으로 소문난 곳을 두루 살펴보게 했어요. 태조 이성계가 직접 가서 명당들을 둘러보기도 했답니다.
1393년에는 계룡산을 도읍지로 정하고 1년 가까이 궁궐을 짓기도 했어요. 그러나 하륜이라는 신하가 계룡산이 너무 남쪽에 치우쳐져 있다고 반대하여 계룡산의 도읍지 건설은 무산되었답니다. 그럼 이제 도읍지를 다른 곳으로 정해야겠죠? 태조와 신하들은 여러 곳을 고심한 끝에 결국 한양을 도읍지로 정했어요.
한양은 나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강이 흐르고 있어 교통이 편리했어요. 또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에 유리하였지요. 게다가 한양은 고려 때부터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으로 꼽히던 곳이었어요.
한양도성 내 주요 건물
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뒤 1394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어요. 제일 먼저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을 짓고 ‘만년토록 큰 복을 누려라.’라는 뜻을 따라 ‘경복궁’이라 이름 지었어요.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 즉 동쪽에는 왕과 왕비를 제사 지내기 위한 종묘를 두었고, 오른쪽, 즉 서쪽에는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직단을 두었어요.
이어 1396년 1월 9일부터 2월 28일까지 49일 간, 이어서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49일 간, 모두 98일 동안 전국 백성 19만 7천 4백여 명을 동원하여 한양도성을 쌓았어요. 한양 주위에는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목멱산(남산), 낙산이 있어요. 이 산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면서 군사적으로는 한양을 지키는 훌륭한 방어선 구실을 하였지요. 이 네 산의 능선을 따라 빙 둘러 성곽을 쌓은 것이 한양도성이에요.
당시 전체 공사구간(총 5만 9,500척, 현재 거리 18.627km)을 600척씩 97개의 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천(天)’, ‘지(地)’, ‘현(玄)’ 등의 이름을 붙인 뒤 전국 각지의 군현(마을)에 있는 백성들을 동원해서 지정된 구간을 맡아 성을 쌓게 했어요. 당시 한양에 살고 있는 인구가 10만 명 내외였다고 하는데, 도성을 짓기 위해 전국에서 동원된 백성이 20만 명에 이르렀던 거예요. 한양도성 공사의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죠?
한양도성 공사를 하면서 동서남북 방향에 4대문을 세우고, 중간 중간에 4소문(혜화문, 광희문, 소의문, 창의문)을 만들었어요. 4대문 중 동대문은 흥인지문, 서대문은 돈의문, 남대문은 숭례문, 북대문은 숙정문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유교에서 중시하는 인, 의, 예, 지의 글자와 뜻을 담아 이름 지은 것이에요. 즉, 유교의 통치 이념을 반영하여 한양도성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와 같이 태조 때 만들어진 한양도성은 이후 세종, 숙송, 순조 때 보수 공사를 하면서 600년 이상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죠.
지금부터 한양도성을 돌아보며 주변에 있는 문화유산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