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마을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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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 마을과 양동 마을은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끼리 수백 년 동안 모여살고 있는 곳이에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같은 성씨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전통 문화를 지켜 온 마을은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아요.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집성촌이라고 해요. 혈연으로 맺어진 친척들이 모여 농사를 짓고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며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키고 있지요. 두 마을은 모두 이름난 정치가와 학자들을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해요.
하회 마을에는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우고 최고 벼슬인 영의정까지 지낸 류성룡이 있으며, 양동 마을에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이언적이 있어요. 이언적의 성리학 연구는 나중에 이황에게 계승되었지요.
두 마을이 집성촌을 이루게 된 과정은 조금 달라요. 하회 마을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지만, 양동 마을은 서로 다른 두 집안이 결혼을 통해 이룬 마을이에요. 하지만 두 곳 모두 조선의 유교적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마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요.
경북 안동에 있는 하회 마을은 지형이 특이해요.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휘감아 흐르고 있지요. ‘하회(河回)’라는 마을 이름도 낙동강이 마을을 휘어 돌아간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요. 원래 하회 마을에는 김해 허씨와 광주 안씨가 모여 살고 있었어요.
이후 고려 말에 이르러 하회 마을 근처인 풍산 상리에 살던 풍산 류씨 가문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풍산 류씨는 하회 마을에 들어온 세 번째 가문인 셈이지요. 그런데 류씨 가문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는 살기 좋은 장소는 없고 나무가 울창한 늪지대밖에 없었다고 해요. 류씨 일가는 숲을 베어 내고 흙을 다져 터전을 마련했는데, 오늘날 양진당이 그 중심지였어요.
경북 경주에 있는 양동 마을은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러나 근처에서 발굴된 백여 기의 돌널무덤과 이웃 안계리 마을에서 발견된 고분군으로 볼 때 최소한 삼국 시대부터 부족 단위의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요.
원래 양동 마을에는 여강 이씨 가문이 살았다고 전하는데, 이후 결혼을 통해 풍덕 류씨와 경주(월성) 손씨도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해요.
조선 시대 양반 마을은 일반적으로 제사를 받드는 큰아들이 중심이 되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양동 마을은 사위가 처가에 들어와 집성촌을 발전시켰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회 마을의 경우 원래 살았던 허씨와 안씨는 떠났지만, 양동 마을은 처음부터 살았던 여강 이씨 가문과 사위로 들어온 풍덕 류씨 가문 및 경주(월성) 손씨 가문이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어요.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양동 마을이 대표적인 예라고 해요. 이제부터 두 마을의 구석구석을 살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