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성균관 유생들은 이렇게 공부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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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이 넘는 유생들은 북소리에 따라 움직였어요. 이른 새벽 북소리가 한번 울리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지요. 북소리가 두 번 울리면 새벽 공부로 하루를 시작하였지요. 북소리가 세 번 울리면 밥 먹으러 식당에 갔어요.

성균관 유생들은 아침저녁으로 식당에 가서 꼭 이름을 적어야 했어요. 식당 입구에는 출석부가 있어서, 여기에 동그랗게 표시를 해야 했어요. 이것을 ‘원점’이라고 해요. 날마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출석을 표시하면 원점 1점을 딸 수 있어요. 원점이 300점이 넘어야 대과를 볼 수 있었어요. 원점 300점이란 곧 성균관에서 300일을 공부했다는 뜻이지요. 꼭 몇 년을 다녀야 한다는 제한은 없었어요. 성균관에서 원점 300점을 따면 바로 졸업할 수 있었지요.


밥을 먹고 나서 북소리가 한 번 더 들리면, 수업을 시작했어요. 유생들은 강의실로 가 스승에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지요. 유생 가운데 누가 질문을 하면, 스승은 답을 해 주고, 나머지 유생들은 배운 것을 복습하지요. 다시 북소리가 두 번 울리면 한 사람씩 스승 앞으로 나아가 공부한 것을 점검받아요. 통과하면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그러지 못하면 다시 공부해야 했지요.


유생들은 『논어』, 『맹자』, 『시경』 등 유교 경전 9과목을 공부하였어요. 모두 공부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기본적으로 3년이었어요. 해마다 3월과 9월에는 시험을 치렀는데, ‘통, 약, 조, 불’ 4단계로 평가를 받았어요. 오늘날의 ‘잘함, 보통, 부족함, 아주 부족함’이라고 할 수 있지요. ‘통’을 받으면 합격이고, ‘불’을 받으면 낙제였어요.

조선 후기 들어 성균관의 위상은 점차 약화되었어요. 지방 곳곳에 서원이 생겨 나고 과거 제도 문제점이 깊어지면서 성균관에서 머물며 공부하는 학생의 수도 점차 줄어들었지요. 하지만 나라의 유교 의례를 여는 장소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기능을 계속 유지하였어요. 또한 성균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종 특별 시험이 시행되어 여전히 과거 시험 준비하는 데 유리한 점이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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