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문화유산

강주룡은 을밀대에 왜 올라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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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평양이라고 하면 고구려의 수도로서 평양성을 비롯해 대동문, 보통문, 을밀대 등 여러 문화유산이 떠오르지요. 그렇지만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어요. 바로 강주룡이라는 여성인데, 일제 강점기에 노동자 탄압에 맞서 싸웠던 인물이에요. 1901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난 강주룡은 14세 때 가난에 쫓겨 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이주했어요. 이후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국내로 돌아왔어요.


강주룡은 부모 형제의 생계를 위해 평양의 고무 공장에서 일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공장 사장이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어요. 그래서 강주룡은 동료들과 함께 사장의 부당한 행위를 반대하며 일을 그만두고 항의하는 파업 시위를 했어요. 그러자 공장 사장은 일본 경찰을 동원해 이들을 쫓아냈어요.


“평원고무공장 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을 내리겠다는 선언을 취소하기 전까지 결코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1931년 5월 29일 아침, 평양의 대표 유적지인 을밀대 지붕 위에서 한 여성이 소리쳤어요. 바로 강주룡이었어요. 그녀는 공장 사장의 부당한 행위를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12m나 되는 높은 을밀대 지붕까지 올라갔던 것이죠. 목이 터져라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달라는 그녀의 외침도 결국 9시간 만에 끝나게 되었어요. 일본 경찰에 의해 끌려 내려오고 말았지요.

비록 을밀대 지붕 위에서의 저항 운동은 일본 경찰에 의해 중단되었지만 그녀는 결코 멈추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단식을 이어나가며 임금 깎은 것을 되돌릴 것을 요구했지요. 며칠 뒤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어서 풀려났지만, 몇 달 만에 사망했어요. 비록 그녀의 노력은 당장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외침은 큰 울림이 되어 이후의 노동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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