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성의 정문 역할을 한 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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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과 조선 시대 그림 속의 대동문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고구려는 6세기 양원왕 때 군사적으로 방어에 훨씬 더 유리한 지형에 새로운 도성을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약 30년의 공사 끝에 기존 안학궁에서 남서쪽으로 약 8km 떨어진 장안성으로 새로 도성을 옮겼어요. 이 장안성이 바로 고구려의 마지막 도성으로 현재 평양성이라 불리는 곳이에요.
대동문은 현재 평양시 대동문동에 있는데, 대동강변에 위치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고구려 평양성의 동쪽에 있는 문으로 대동강 남쪽을 연결하는 주요한 교통로였기 때문에 평양성의 여러 성문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어요. 대동문 누각에는 ‘읍호루(揖灝樓)’라고 씌어 있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문의 누각에서 손을 내밀어 대동강의 맑은 물을 떠 올린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주변 경치와 어울리는 멋진 이름이지요.
하지만 현판의 멋진 뜻과는 달리 대동문은 여러 차례 전쟁으로 인해 불타는 아픔을 겪었어요. 고려 시대 거란의 침입으로 불탔다가 다시 지어졌고, 조선 시대 병자호란 때에도 불탔어요. 그래서 지금의 문은 조선 후기 인조 때 다시 지어진 것이에요. 이 뿐만이 아니었어요. 6·25 전쟁 때 폭격을 맞아 허물어졌는데, 그 이후에 보수 공사를 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어요.
고려 시대 기록에 따르면 문 앞에 반원 형태의 옹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남아 있지 않아요. 다시 지어질 때 생략된 것이지요. 조선 시대에 그려진 ‘평양성도’ 그림에서는 옹성이 갖춰진 형태의 대동문을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