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의 무덤으로 알려진 동명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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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왕릉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평양시 남쪽 역포구역 용산리에 위치한 동명왕릉은 고구려 시조 주몽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어요. 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은 졸본(현재의 중국 랴오닝성 환런 지역)에 터를 잡고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세웠어요. 이후 나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주몽은 기원전 19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졸본에 있어야 할 주몽의 무덤이 왜 평양에 있을까요?
졸본에서 평양까지는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먼 거리거든요. 역사학자들은 5세기에 고구려가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 시조 주몽의 무덤도 함께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현재 동명왕릉의 무덤 형식을 볼 때 4∼5세기의 것으로 보이거든요.
고구려의 무덤은 초기에 돌무지무덤이 유행하다가 나중에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뀌었어요. 동명왕릉은 이 두 가지 요소가 다 있어서 두 무덤 양식이 바뀌는 과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고구려의 초기 무덤(돌무지무덤 양식의 산성하고분군)과 굴식 돌방무덤의 구조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무덤의 구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단의 돌로 만든 기단 위에 흙을 쌓아 올린 돌기단 흙무덤이에요. 기단돌의 높이는 1.5m, 현재 남아 있는 봉분(흙으로 덮인 부분)의 높이는 6.5m로서 무덤의 높이가 8.15m에 이르는데, 원래는 1m 정도 더 높았던 것으로 보고 있어요. 무덤의 내부는 널길을 거쳐 앞돌방, 널(관)이 있는 널방으로 되어 있어요. 널방의 벽과 천장에는 연꽃무늬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떨어지거나 지워져 없어지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어요.
비록 고구려는 7세기에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했지만, 동명왕릉은 그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보호받았어요. 기록에 따르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도 고구려 시조의 무덤이라고 하여 매년 후하게 제사를 지냈다고 해요.
유엔(UN)의 산하기구인 유네스코(UNESCO)에서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매년 지정하고 있어요. 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고 하지요. 북한에는 2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는데, 첫 번째가 2004년에 지정된 ‘고구려 고분군’이고, 두 번째가 2013년에 지정된 ‘개성의 역사 기념물과 유적’이에요. 동명왕릉은 ‘고구려 고분군’에 속한 약 30개의 무덤 중 하나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