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제사와 공부를 함께 하던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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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이성계가 향교를 세울 것을 장려한 이후 세종 때에 이르면 전국 329개 지역에 향교가 세워졌어요. 각 고을 마다 향교의 크기는 달라도 반드시 짓는 건물이 있었어요. 그게 뭘까요?
그 공간은 바로 문묘에요. 문묘는 대성전과 동무, 서무라 불리는 건물이 있는 곳이에요. 그중에서도 대성전은 가장 중요한 건물이에요.
대성전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에요. 여기서 위패는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나무에 적에 놓은 것인데요. 그 위패에 영혼이 있다고 여겼어요. 대성전은 성균관에도 있어요. 대성전이 있는 문묘에서는 해마다 2월과 8월이 되면 석전제라 불리는 유교 의례가 치러져요. 또 수령으로 임명된 사람이 그 지역에 부임하거나 떠날 때도 문묘에 가서 인사를 해야 할 정도였어요.
전주향교 대성전(전북 전주시)
향교에는 공부를 위한 공간인 명륜당도 있어요.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강의도 듣고 토론을 하는 곳이었어요.
전주향교 명륜당(전북 전주시)
문화재청
향교의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했지요. 기숙사 건물은 보통 명륜당 앞에 두 개의 건물을 지어 사용했어요. 이 두 개의 건물은 각각 동재와 서재로 불렀어요. 조선 후기의 경우 동재는 양반의 자제가 머물렀고, 서재는 서얼이나 일반 백성의 자제들이 머물렀어요.
전주향교 동재(전북 전주시)
문화재청
전주향교 서재(전북 전주시)
문화재청
이렇듯 향교는 크게 두 공간으로 이루어졌어요. 제사를 지내는 곳과 공부를 하는 곳으로 말이죠. 그리고 두 공간은 담을 쌓아 서로 구별했어요.
조선 시대 만들어진 서당은 여러 종류가 있었어요. 양반이 훈장 선생님을 초빙하여 아이들의 교육을 맡기는 경우도 있었구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서당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그리고 훈장 선생님이 마을 아이들을 위해 자기 집에 서당을 만들어 교육하기도 했지요.
은곡서당(경북 안동시)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