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화폐

의천의 화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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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승려가 된 의천은 중국 송나라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는 상업이 발전한 송나라에서 돈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점을 눈여겨보았어요. 고려로 귀국한 의천은 ‘화폐론’이라는 글을 지어 숙종에게 바쳤어요. 이 글에서 의천은 다음과 같이 건의했어요.


“폐하! 옷감과 쌀을 교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점이 많습니다. 백성의 이로움과 국가의 복을 얻으려면 동전을 만들어 사용해야 합니다. 화폐를 사용하면 운반이 편리하고, 쌀이나 옷감과 달리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관리들의 봉급을 화폐로 주게 되면 백성들에게 세금으로 쌀을 빨리 내라고 독촉하지 않아도 됩니다. 뿐만 아니라 쌀을 모아 놓았다가 흉년에 대비할 수도 있습니다.”


의천의 건의를 받아들인 숙종은 해동통보를 만들어 관리와 군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또 주점을 개설하여 동전을 유통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숙종의 적극적인 동전 유통 정책은 물건을 화폐처럼 사용하던 문벌 귀족 세력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어요. 또한 당시 상업 발달의 성과를 바탕으로 돈을 유통시켜 국가 재정을 늘리려는 의도도 함께 있었지요.

그러나 의천의 생각과 달리 화폐 유통을 반대한 인물도 있었어요. 무신 집권기의 관리 임춘은 돈을 의인화하여 지은 『공방전』이라는 소설을 지었는데, 그는 이 소설을 통해 화폐를 널리 유통시키면 결국 일부 권력 있는 사람과 부자들의 재산을 모으는 데만 기여할 뿐 일반 백성에게는 큰 도움이 못된다고 주장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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