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을 떠났으나 죽음을 맞이하다
컨텐츠 정보
- 4 조회
- 목록
본문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폭넓게 세상을 접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났어요. 1942년 3월 도쿄에 있는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했어요. 일본에서의 대학 생활은 기대만큼 재밌지가 않았어요. 특히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하는 교련 시간은 윤동주가 가장 괴로워 한 수업이었어요. 교련을 가르치는 교관은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자주 했어요.
“한국인들은 미개한 인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황 폐하께서 미개한 한국인들에게 군대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다.”
이때 학생들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것은 한국인들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윤동주의 말에 일본인 교련 교관은 화를 내며 앞으로 윤동주를 주의 깊게 지켜보겠다고 협박했어요. 이후 교련 교관은 시시때때로 윤동주를 괴롭히곤 했어요. 그러나 일본인 학생들은 윤동주를 조용하지만 할 말은 하는 한국인 유학생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본 유학 후 여름방학에 귀향한 윤동주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얼마 후 윤동주는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으로 전학을 갔어요. 도시샤대학은 윤동주가 가장 좋아했던 시인 정지용도 졸업한 학교였어요. 윤동주는 이미 교토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송몽규를 비롯해 한국인 학생들과 자주 모였어요. 그리고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을 돌려보며 소감도 이야기하고, 애국심을 높이는 토론도 하였어요.
또한 이들은 일제가 한국인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기 위해 실시하려는 징병제를 비판하며 저항 정신이 담긴 시들도 발표하였어요. 그리고 민족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가장 빠른 길은 바로 독립이라고 생각했어요.
1943년 7월 여름방학을 앞둔 윤동주는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어요. 짐을 미리 부치고 차표도 예매해 두었어요. 친한 친구들이 윤동주를 위해 송별회도 열어 주었지요. 고향으로 떠나기 전날 있었던 송별회에서 윤동주는 친구들 앞에서 민요 ‘아리랑’을 불렀어요. 모두 고향이 그립고,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는 조국의 현실이 안타까워 눈물을 글썽였어요.
그때 윤동주가 머물던 하숙집에 일본 형사들이 들이닥쳤어요. 그들은 다짜고짜 윤동주의 손에 수갑을 채운 뒤 경찰서로 끌고 갔어요.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아 왔던 윤동주는 교토지방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로 2년 형을 선고받았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어요. 당시 함께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았던 송몽규도 같은 죄목으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했어요.
훗날 증언에 따르면 윤동주와 송몽규 등 한국인 죄수들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정체 모를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았다고 해요. 일명 ‘생체 실험’이라고 하는데, 살아있는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여러 가지 의학 실험을 했다고 해요. 주사를 맞고 나면 식은땀이 나고 입맛도 의욕도 없고 머리가 심하게 아팠다고 면회 때 얘기했대요.
1945년 2월 16일, 윤동주가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다가 쓰러졌어요. 그리고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 뒤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일본에 있는 감옥에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시신은 화장된 뒤 가족들에게 인도되어 그해 3월 장례식을 치른 후 간도 용정에 묻혔어요.
윤동주의 장례를 치른 하루 뒤 송몽규도 감옥에서 죽었고, 이후 그의 무덤은 윤동주의 무덤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되었어요. 평생 따뜻한 우정을 나눈 윤동주와 송몽규는 죽어서도 가까운 곳에서 함께하게 되었지요.
식민지 지식인의 슬픔, 그 속에서도 독립의 희망을 담은 시를 지은 윤동주는 살아있을 때 시집을 내지 못했어요. 비록 윤동주와 이양하 교수가 갖고 있던 시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정병욱이 갖고 있던 원고 덕분에 1948년 윤동주의 유일한 시집인『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빛을 보게 되었어요.
당시 이 시집의 서문은 윤동주가 좋아하고 존경했던 시인 정지용이 써 주었어요. 정지용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윤동주를 평가했어요.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1955년에 출판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증보본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