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서원에서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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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향촌 사람들이 모이는 일종의 공공장소였어요.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지역 안팎의 여러 소식이 모여드는 곳이었지요. 향촌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서원에는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모여 논의를 거친 후 결정하곤 했지요.
또한 효자‧열녀(남편이 죽은 후에도 죽을 때까지 혼자 살며 시부모를 모시거나, 남편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인)를 표창하고 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한 자를 바로잡아 향촌의 기풍을 바로잡기도 하였어요.
그러나 조선 후기 들어 일부 서원은 권위를 앞세워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기도 하였어요. 백성에게 묵패라는 문서를 보내 여러 종류의 금품을 요구하였어요. 서원의 도장에 먹을 찍어 보내서 묵패라는 명칭이 붙었던 건데요. 원래 묵패는 서원의 일을 하기 위한 문서였지만 점차 공포의 문서가 되었지요. 대표적 사례가 화양 서원에서 발행한 화양 묵패 사건이었어요.
화양 서원에서 일어난 화양 묵패 사건은 대표적인 서원의 횡포였어요. 화양 서원은 나라로부터 많은 토지와 노비를 받아 경제적으로 풍요했지요. 게다가 송시열의 제자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공자를 받든 문묘에 그들의 스승을 모시면서 서원의 힘은 날로 커졌지요.
그러나 화양동 서원은 점점 타락해 갔어요. 화양 묵패는 주로 제사에 쓸 비용을 걷는다는 명목으로 발급되었는데요. 한 번 묵패가 발행되면 지방관이라도 감히 거역하지 못할 정도였어요. 백성들도 묵패를 받으면 논밭을 팔아서라도 바쳐야 했지요. 만약 돈을 구하지 못하면 서원에 끌려가서 갇히거나 형벌을 받기도 했대요.
서원은 유교 교육을 통해 향촌의 풍속과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였지만,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며 본래의 교육 기능보다는 양반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으로 변해 갔어요.
여러분은 존경하는 인물이 있나요? 누구나 좋아하고 본받고 싶은 인물이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존경하는 인물을 생각하면서 공부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화양 서원이 있었던 터(충북 괴산군)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