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서원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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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교육기관이지요. 그래서 공부하기 좋은 한적한 곳에 세워졌어요. 또 서원에서는 뛰어난 업적을 남긴 유학자들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요. 이황은 서원을 세우며 이렇게 말했어요.
서원은 성균관이나 향교와 달리 산천이 아름답고 한적한 곳에 있어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고, 교육적 성과도 크다.
서원은 쇠퇴하여 허물어진 사찰이나 절터, 뛰어난 옛 유학자의 고향 등에도 세워졌어요. 예컨대 순흥의 소수 서원은 중국의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안향의 고향 마을인 영주 순흥면에 세워졌어요.
또 이름난 유학자가 살아 있을 때 세웠던 서당이 발전하여 서원이 된 경우도 있어요. 도산 서당은 퇴계 이황이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던 곳이었어요. 이황의 제자들은 스승이 세상을 떠나자 도산 서당 옆에 사당을 세우고 교육 시설을 갖춘 뒤 도산 서원을 세운 것이지요.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크게 늘어났어요. 선조 때부터 빠르게 늘더니, 숙종 때에는 전국의 도마다 80~90개가 될 정도로 포화 상태가 되었어요. 정약용도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 ‘고을마다 수십 개의 서원이 있었다.’라고 적으며 지나치게 많은 서원을 염려할 정도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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