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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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이 54개 나라로 이루어졌다는 거 기억나지요? 중국 역사책에는 이런 마한의 나라 이름이 모두 적혀있어요. 나라 중 규모가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家)의 사람이 살았다고 해요. 큰 나라와 작은 나라를 지배하는 군장도 각각 ‘신지’와 ‘읍차’로 구별해서 불렀다고 해요.
그런데 정치적 지배자인 신지와 읍차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었어요. 바로 천군이 다스리는 ‘소도’라는 곳이죠, ‘소도’에는 큰 나무에 북, 방울, 새 모양의 장식 등을 매달아 놓아 특별한 곳임을 표시했어요. 이곳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도망가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어요.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과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나뉘어 있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소도의 모습
마한에서는 농사가 발달했어요. 이때 경작된 작물은 청동기시대부터 생산된 조, 피, 보리 이외에 벼도 있었답니다. 벼농사는 다른 작물보다도 충분한 물이 공급되어야 해요. 마한 사람들은 곳곳에 저수지를 만들고, 씨를 뿌린 후인 5월에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어요. 벼를 거두어들인 10월에도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하늘에 제사를 지냈지요.
농사가 발달하고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마한의 지배층은 좋은 옷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했어요, 중국 역사책에는 마한에서 누에와 뽕나무를 키웠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를 통해 마한에서는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해요. 실제로 광주 신창리 무덤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비단 조각이 발굴되었어요. 또 나주 신촌리 무덤에서는 지배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화려한 금동관과 금동신발도 발굴되었어요.
나주 신촌리 금동관
국가유산청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신라나 백제의 무덤을 발굴하면 금으로 된 장식품이 많이 나오는데, 마한의 무덤에서는 금으로 만든 장식품보다 옥이나 구슬로 된 장식품이 더 많이 출토된다는 거예요. 이를 통해 마한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장식품보다 구슬이나 옥으로 치장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추측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