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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사(KOREAHISTORY) &amp;gt; 고대사 &amp;gt; 영산강 유역의 마한 유적</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mahantrace</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영산강 유역의 마한 유적 (2025-05-03 09:33:18)</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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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한이 백제에 멸망 당한 시기는 언제일까?</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mahantrace/7</link>
<description><![CDATA[<p>경기도, 충정도, 전라도 일대에서 발전했던 마한은 언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요? 중학교 역사책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어요.</p><p>백제는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때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해상 교역망을 둘러싸고 고구려와 대립하였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대동강 이남의 땅을 차지하였다. 남쪽으로는 마한의 남은 세력을 정복하여 남해안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해상 교역망을 장악하며 남조 및 가야, 왜 등과 교류하였다.</p><p><br /></p><p>- 2015 개정교육과정 중학교 역사② 지학사-</p><p><br /></p><p>일반적으로는 근초고왕 24년(369)에 마한이 백제에 멸망 당했다고 해요. 그런데 요즘은 다른 주장도 나타나고 있어요. 대표적인 근거로 1996년에 발굴된 나주 복암리 3호분을 들 수 있어요. 이 고분은 마한 무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연구를 해보니 만들어진 시기가 5세기 말이라는 거예요. 4세기 후반에 멸망 당했다는 마한이 이 시기에 자신들만의 독특한 무덤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이죠.</p><p><br /></p><p>또 하나의 근거로는 중국에서 발견된 ‘양직공도’를 들 수 있어요. ‘양직공도’에서 ‘양’은 6세기에 있었던 중국 남조의 여러 나라 중 하나예요. 백제 무령왕릉에서 양나라의 동전이 발견될 정도로 우리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던 나라지요. 이 양나라가 주변 국가한테 조공을 받은 내용을 그림과 글로 작성해 놓은 것이 ‘양직공도’예요. ‘양직공도’에는 백제 사신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해요.</p><p>그런데 여기에는 백제 사신만 그려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마한의 작은 나라로 생각되는 나라의 사신들도 그려져 있다고 해요.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때 이미 멸망한 나라가 6세기에 있었던 나라인 양에게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죠.</p><p><br /></p><p>이렇듯 마한이 멸망한 시기를 두고 두 가지 의견이 대립하고 있어요. 마한이 멸망한 시기가 언제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나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마한의 역사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앞에서 소개한 마한 관련 장소를 부모님과 함께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3T09:33:1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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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mahantrace/6</link>
<description><![CDATA[<p>마한이 54개 나라로 이루어졌다는 거 기억나지요? 중국 역사책에는 이런 마한의 나라 이름이 모두 적혀있어요. 나라 중 규모가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家)의 사람이 살았다고 해요. 큰 나라와 작은 나라를 지배하는 군장도 각각 ‘신지’와 ‘읍차’로 구별해서 불렀다고 해요.</p><p>그런데 정치적 지배자인 신지와 읍차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었어요. 바로 천군이 다스리는 ‘소도’라는 곳이죠, ‘소도’에는 큰 나무에 북, 방울, 새 모양의 장식 등을 매달아 놓아 특별한 곳임을 표시했어요. 이곳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도망가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어요.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과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나뉘어 있음을 보여주는 거예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2054_2301.JPG" title="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2054_2301.JPG" alt="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2054_2301.JPG" /><br style="clear:both;" />소도의 모습</p><p><br /></p><p><br /></p><p><br /></p><p>마한에서는 농사가 발달했어요. 이때 경작된 작물은 청동기시대부터 생산된 조, 피, 보리 이외에 벼도 있었답니다. 벼농사는 다른 작물보다도 충분한 물이 공급되어야 해요. 마한 사람들은 곳곳에 저수지를 만들고, 씨를 뿌린 후인 5월에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어요. 벼를 거두어들인 10월에도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하늘에 제사를 지냈지요.</p><p><br /></p><p>농사가 발달하고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마한의 지배층은 좋은 옷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했어요, 중국 역사책에는 마한에서 누에와 뽕나무를 키웠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를 통해 마한에서는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해요. 실제로 광주 신창리 무덤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비단 조각이 발굴되었어요. 또 나주 신촌리 무덤에서는 지배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화려한 금동관과 금동신발도 발굴되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2118_1939.JPG" title="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2118_1939.JPG" alt="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2118_1939.JPG" /><br style="clear:both;" />나주 신촌리 금동관</p><p>국가유산청</p><p><br /></p><p><br /></p><p><br /></p><p>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신라나 백제의 무덤을 발굴하면 금으로 된 장식품이 많이 나오는데, 마한의 무덤에서는 금으로 만든 장식품보다 옥이나 구슬로 된 장식품이 더 많이 출토된다는 거예요. 이를 통해 마한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장식품보다 구슬이나 옥으로 치장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추측할 수 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3T09:28:57+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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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한 삼국과 다른 특징을 가진 무덤을 만들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mahantrace/5</link>
<description><![CDATA[<p>옛날부터 오랫동안 무덤을 만들 때는 땅을 파고 그 속에 시신을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마한에서는 이런 땅을 파고 묻는 무덤도 있지만 땅 위에 흙을 쌓고 그 속에 시신을 두는 무덤도 많이 발견되어요. 마치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이런 무덤을 분구묘(墳丘墓)라고 불러요. 분구묘는 나중에라도 수직 또는 수평으로 무덤을 추가해서 만들기가 쉬웠어요.</p><p>분구묘 중 대표적인 것이 전라남도 나주 복암리에서 발견되었어요. 나주 복암리 3호분은 하나의 분구에 다양한 종류의 무덤이 41기나 발견되었는데, 역사학자들이 연구해 보니 무덤들은 약 400여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1584_5106.JPG" title="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1584_5106.JPG" alt="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1584_5106.JPG" /><br style="clear:both;" />나주 복암리 3호분 유구 전경</p><p>국가유산청</p><p><br /></p><p><br /></p><p><br /></p><p>마한을 대표하는 또 다른 무덤으로는 독무덤을 들 수 있어요. 독무덤은 다른 말로는 옹관묘라고도 부르는데, 앞에서 본 것처럼 항아리에 죽은 사람의 시신을 보관하는 것을 말해요.</p><p><br /></p><p>독무덤은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도 종종 나타나요. 이때의 독무덤은 주로 어린아이들의 장례용으로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마한의 독무덤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것 이외에 어른들을 묻기 위해 크게 만들어진 것도 많아요. 그리고 지리적으로는 영산강 유역에서, 시기적으로는 마한이 백제에 흡수되기 이전의 것이 많이 발견된답니다.</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1655_4751.JPG" title="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1655_4751.JPG" alt="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1655_4751.JPG" /><br style="clear:both;" />독널의 매장방법</p><p><br /></p><p><br /></p><p><br /></p><p>마한 사람들이 독무덤을 만든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마한 무덤의 특징인 분구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요. 마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사람이 죽으면 나무로 만든 관이나 상자를 사용해 시신을 묻었던 것 같아요.</p><p><br /></p><p>그런데 시간이 흘러 분구묘에 또 다른 사람의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상이나 이전에 죽은 사람의 나무로 만든 관이나 상자가 썩어서 시신이 잘 보관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 대안으로 썩지 않는 항아리를 크게 만들어 시신을 넣어 묻은 거라는 주장이 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3T09:21:1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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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한의 역사가 시작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mahantrace/4</link>
<description><![CDATA[<p>마한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역사책에 남아 있어요. 진수라는 사람이 쓴 『삼국지』에는 한반도 남부에는 한(韓)이 있고, 이들은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을 이루고 있다고 적혀있어요.</p><p>『삼국지』보다 먼저 편찬된 또 다른 역사책이자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역사를 정리한 『위략』에는 고조선 왕 준왕이 위만에게 쫓겨나 바다를 건너 한(韓)이 있는 지역으로 왔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래서 마한의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고조선에서 온 사람들이 아산만 일대에 살기 시작하면서 마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p><p><br /></p><p>이후 마한은 낙랑을 비롯한 주변 지역과 교류하면서 힘을 키워 한강 유역을 비롯해 충청도, 전라도 지역으로 세력을 넓혀갔어요. 이런 마한에 위기가 찾아왔어요. 바로 한강 유역에서 성장한 백제의 힘이 세졌기 때문이에요. 백제는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기도에서 시작하여 충청도, 전라도 지역까지 차츰 영토를 넓혀갔어요. 그 과정에서 마한 지역은 백제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죠.</p><p><br /></p><p>마한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어요. 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무덤의 형태에요. 인간은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무덤을 만들어 왔어요. 그런데 무덤의 양식은 인간이 만든 문화유산 중 쉽게 변화하지 않는 것 중 하나예요.</p><p><br /></p><p>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무덤의 형태로 각 나라의 연관성을 살피기도 해요. 이를테면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돌무지무덤(적석총)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통해 두 나라가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p><p><br /></p><p>그렇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는 다른 마한 무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1146_867.JPG" title="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1146_867.JPG" alt="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1146_867.JPG" /><br style="clear:both;" />석촌동 백제초기적석총 2호분</p><p>국가유산청</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3T09:12:4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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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마한의 역사를 알려면 이곳을 찾아가요.</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mahantrace/3</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0857_1828.JPG" title="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0857_1828.JPG" alt="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0857_1828.JP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3T09:07:4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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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한, 삼한을 이끌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mahantrace/2</link>
<description><![CDATA[<p>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가 어느 나라인지 아나요? 맞아요.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세워진 고조선이죠. 고조선의 역사는 기원전 108년 중국 한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할 때까지 아주 오랜 기간 이어졌어요. 그 과정에서 철기도 받아들였지요.</p><p><br /></p><p>철기를 만드는 기술이 널리 퍼져가면서 만주와 한반도에는 여러 나라가 세워졌어요. 북쪽에는 부여와 고구려, 동해안 일대에는 옥저와 동예,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에는 삼한이 자리 잡았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0634_3247.JPG" title="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0634_3247.JPG" alt="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0634_3247.JPG" /><br style="clear:both;" />철기를 바탕으로 세워진 여러 나라</p><p><br /></p><p><br /></p><p><br /></p><p>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눌 수 있어요. 마한은 지도에서 보듯이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에 있었고, 54개의 크고 작은 나라로 이루어졌다고 해요. 이러한 54개 나라를 하나로 묶어서 마한이라 불러요.</p><p>그 중심지는 오늘날 천안, 익산, 나주 등이에요. 진한은 경상도의 낙동강 동쪽의 경주와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12개의 나라가 있었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변한은 낙동강 하류 김해와 창원 지역에 있었어요. 변한은 진한처럼 12개의 나라로 이루어졌다고 해요.</p><p><br /></p><p>이렇듯 삼한에는 78개의 나라가 있었던 거예요. 각 나라를 다스리던 지배자는 그 세력 크기에 따라 신지, 읍차 등으로 불렸어요. 그리고 이러한 삼한을 이끌던 나라도 있었어요. 바로 목지국이에요. 목지국은 마한 54개 나라 중 가장 힘 있는 나라였고, 목지국이 있던 마한이 삼한 중 가장 세력이 컸어요. 자 그럼 지금부터 마한의 역사에 대해 살펴볼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3T09:04:1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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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영산강 유역의 마한 유적</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mahantrace/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0338_3962.JPG" title="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0338_3962.JPG" alt="05d63b3ad274358b2fec080983130ffd_1746230338_3962.JPG" /><br style="clear:both;" />국립나주박물관(전남 나주시)</p><p><br /></p><p><br /></p><p><br /></p><p>“교수님! 어제 신문 기사를 보니 마한 역사문화권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 같아요.”</p><p><br /></p><p>“저도 보았어요. 앞으로 마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겠군요.”</p><p><br /></p><p>2020년 한 대학생이 교수님과 나눈 가상 대화예요. 대화 속에서 등장하는 마한은 어떤 역사를 간직한 나라일까요? 지금부터 마한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을 살펴볼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3T08:59:21+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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