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왕을 향해 폭탄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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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2월 22일 이봉창은 몸에 폭탄을 숨긴 채 일본에 도착했어요. 이봉창은 신문을 샅샅이 살펴보았어요. 생각대로 일본 왕이 1월 8일 요요기 연병장을 방문할 것이라는 기사가 있었어요.
“1월 8일에 꼭 상품이 팔릴 것.”
이봉창은 일본 왕이 지날 길을 미리 살펴 두었어요. 상하이로 1월 8일 일본 왕을 죽인다는 전보도 보냈어요. 혹시 몰라 일본 헌병대장의 명함도 얻어 두었어요. 이제 모든 준비는 다 끝났어요.
이봉창은 미리 봐 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거리엔 벌써 일본 왕을 보러 온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본 헌병과 경찰들의 감시가 너무도 삼엄했어요.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경찰들에게 들킬 것이 틀림없었어요. 이곳은 어렵겠다고 판단했어요.
다음으로 봐 둔 곳으로 움직였어요. 그런데 그곳엔 일본 왕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일본 왕이 궁으로 돌아가는 길을 바꾼 것이었어요. 아차 싶었어요. 다급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봉창은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며 마지막 장소로 서둘러 갔어요. 천황 궁 앞은 일본 왕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헌병과 경찰들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검문하고 있었어요. 자칫하다가는 몸에 지닌 수류탄이 발각될 수 있는 난처한 상황이었어요.
이봉창은 어깨를 펴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어요. 곧 헌병들이 그에게 다가왔어요. 그러다 일전에 구해놓은 헌병대장 명함이 떠올랐어요. 헌병들이 그의 몸을 수색하려 하자 이봉창은 말없이 헌병대장 명함을 꺼내 보였어요. 헌병들은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지요. 이봉창은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듯 눈을 부릅떴어요. 깔끔한 옷차림에 예의 바른 말투는 누가 보아도 일본 신사였지요.
“아니, 대장님의 명함이잖아. 가시지요.”
이봉창은 사람들의 어깨를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갔어요. 큰 산을 넘은 기분이었어요. 드디어 눈앞에 천황 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어요.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숨을 길게 들이마셨어요. 그리고 차분하게 기다렸지요.
잠시 뒤 사람들이 파도처럼 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했어요. 일본 왕이 나타난 것이지요. 이봉창도 다른 사람들처럼 머리를 숙였어요. 입술은 바짝 타들어 가고 등골을 타고 땀 줄기가 흘러내렸어요.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어요.
이봉창의 일왕을 향한 의거
‘조금만 더 가까이. 조금만 더 가까이 와라. 이때다!’
이봉창은 일본 왕을 태운 마차를 향해 수류탄을 힘껏 던졌어요. 마차 바퀴가 부서지고 다친 말이 휘이잉거렸어요. 놀란 사람들은 우왕좌왕했어요. 헌병과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다녔어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수류탄의 화력이 약했어요. 더구나 일본 왕이 탄 첫 번째 마차는 지나간 뒤였어요. 두 번째 수류탄을 던지려고 했어요. 그때 다른 사내가 범인으로 지목받아 헌병들에게 끌려가고 있었어요. 순간 이봉창은 사람들 앞으로 나오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봉창 의사가 수류탄을 던진 곳
국사편찬위원회
“그 사람은 놔 주시오. 내가 일본 왕에게 수류탄을 던졌소.”
이내 헌병과 경찰들이 이봉창에게 달려들었어요. 이봉창은 그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크게 외쳤어요.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일본 왕을 처단하는데 실패했지만 일제에 큰 충격을 주었어요. 이제 진짜 조선인이 되었다 생각하니 뜨거운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이봉창은 스스로 체포된 후 마지막까지 당당히 재판을 받았어요. 그리고 사형을 선고받고, 1932년 10월 10일에 순국하였어요.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이봉창과 재판정에 끌려가는 이봉창
국사편찬위원회
“난 일본 왕 개인을 미워하지 않소. 그러나 내 나라를 짓밟고 세상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일본 왕을 증오하오. 그를 세상에서 없애는 것이 내 나라를 되찾는 길이고,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고 확신하오.”
이봉창의 의거는 비록 수류탄이 명중하지 못하여 실패로 돌아갔지만, 전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어요. 또한 이후 국내외의 독립 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지요.
이봉창은 식민지 시대 청년으로 살면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일본 왕을 처단하는 독립 운동을 선택하였어요. 중국 언론들까지 이봉창의 의거 소식을 전하면서 그를 ‘의사(義士)’로 표현하며 높이 평가하였어요. 만약 여러분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이봉창과 같은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