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일본 사람처럼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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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1월, 일본 오사카에 도착한 이봉창은 일자리를 구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어요. 그러다 가스 회사에 취직하면서,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었어요. 그러나 곧 그만두게 되었어요. 간장 가게에서도 일하게 되었지만 여의치 않았어요.


이봉창은 할 수 없이 오사카 항구에서 하루 품삯을 받는 부두 노동을 하였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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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왕복해 운항하던 여객선과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형님, 오늘 품삯 얼마 받았소? 내 품삯이 저번의 반밖에 안 돼.”

“자네가 일본 사람이 아닌 조선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나 보군.”

“아니, 이런 데서도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을 차별한다는 거예요?”

이봉창은 생활하며 조선인에 대한 차별 대우를 실감했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람 대접받고 살길은 일본 사람으로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어요. 이봉창은 일본 사람과 똑같은 말과 행동을 몸에 익히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어요. 그러던 1928년 어느 날, 한 일본인 친구가 그에게 말했어요.

“기노시타, 천왕폐하 즉위식이 있다는데 함께 가보지 않겠나?”

이봉창은 일본인 친구와 함께 식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어요. 일본 경찰들은 한 사람씩 훑어보며 꼼꼼히 검사했어요. 일본인 친구는 검사를 끝내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일본 경찰은 이봉창의 몸 구석구석을 뒤졌어요. 그의 몸에서 나온 것은 오사카로 돌아갈 차비와 조선에서 온 편지 한 장뿐이었어요.
그런데 일본 경찰은 편지를 보더니 무작정 이봉창을 경찰서로 끌고 갔어요. 그리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경찰서 유치장에 가두어 버렸어요. 이봉창은 당황했어요. 이상한 편지도 아니고 서울에서 온 순수한 안부 편지니까 괜찮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날 왜 잡아 온 겁니까? 그 이유나 좀 압시다.”

이봉창은 답답한 마음에 쇠창살을 두드리며 하소연해 보았어요. 하지만 경찰은 그저 한번 노려보고 윽박지를 뿐 소용이 없었어요. 열흘이 지나서야 이봉창은 유치장에서 겨우 풀려났어요. 자신이 유치장에 갇힌 이유는 주머니에 있던 편지가 단지 조선어로 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봉창은 분통이 터졌어요.

이 일로 조선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주변 사람들은 이봉창과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았어요. 자신의 사상이 좋지 않아서 경찰서에 잡혀간 거라고 소문이 퍼진 것이었어요. 자기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어요.

이봉창은 아예 조선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사는 곳을 떠나 일본 사람들만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일본에 와 있는 조카딸과도 만나지 않았어요. 철저하게 자신은 일본 사람이라고 속였지요. 누구도 자신을 조선 사람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러나 그렇게 일본 사람으로 살수록 이봉창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어요. 일본 사람으로 살면 모든 게 다 편할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당시 많은 조선 사람들이 일제에 맞서 싸우고 있었어요. 이봉창은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그제야 자신이 일본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깨달았어요. 자신이 왜 일본 사람의 반쪽 취급을 당해야 했는지, 왜 차별받고 살아야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모두 우리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이었어요.

‘그래, 사람답게 사는 건 내가 아니라 지금 일본놈들과 맞서 싸우는 조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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