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유적

크리스마스의 기적, 흥남 철수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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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에 고립된 10만여 명의 유엔군이 탈출하기 위해 35만 톤의 군수물자를 가지고 흥남 부두로 왔어요. 유엔군을 따라 동해안 지역의 피난민도 항구로 몰려들었어요.


“군함에 민간인을 태울 수는 없소! 병력과 물자를 옮기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오.”

“이대로 철수하면 저 사람들은 모두 다 죽습니다!”


“피난민을 배에 태울 수 없다면 우리 국군은 피난민과 함께 걸어서 38선을 넘을 것입니다.”


미군 군사고문이었던 현봉학은 알몬드 미 제10군단장에게 피난민들의 탈출을 도와줄 것을 간청했어요. 피난민 탈출에 김백일 제1군단장도 한목소리를 냈어요. 알몬드 장군은 여러 사람의 간청에 유엔군과 함께 피난민도 탈출시킨다는 결정을 했어요. 그리고는 주변의 모든 선박을 동원해 피난민들을 배에 태웠어요. 전함과 화물선, 상선 등 193척의 배가 철수 작전에 동원되었어요.


여러 함선 중 가장 많은 피난민을 태운 배는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였어요. 그런데 항공유를 싣던 화물선의 정원은 겨우 60명뿐이었어요. 부족한 자리를 넓히기 위해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피난민을 최대한 많이 태우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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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

국가기록원




화물 대신 피난민 1만 4천 명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부산을 향해 출발했어요. 많은 피난민들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음식을 비롯해 모든 것이 부족했어요.


하지만 피난민들은 질서를 잘 지켜가며 한 사람도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어요. 오히려 3일 간의 항해 도중 배 안에서 5명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했어요.

메리디스 빅토리호를 포함해 많은 선박이 동원된 철수 작전으로 10만 명의 피난민들이 무사히 흥남항을 떠났어요. 배에 싣지 못한 군수물자는 항구와 함께 폭파되었어요. 그리고 피난민이 떠난 바로 다음날인 12월 25일에 중공군이 흥남을 점령하였지요.


간발의 차로 피난민 10만 명의 목숨을 구한 흥남 철수 작전! 크리스마스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에요.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전국토를 황폐화시켰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 그리고 깊은 마음의 상처만 남긴채 끝났어요.


6·25 전쟁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전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죠. 전쟁이 아닌 남한과 북한 모두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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