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서양 문물

조선, 서양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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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지금의 중국 땅에 있던 명이나 청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냈어요. 청의 수도 연경(지금의 베이징)으로 보낸 사신단을 연행사라 불렀어요. 연행사에는 관리들만 있던 것이 아니었어요. 통역관이나 의원(의사), 화가, 군인들도 있었고, 말이나 수레를 담당한 마부나 식사를 담당한 하인들도 있었어요. 또한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상인이나, 중국의 새로운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학자들도 있었지요.


당시 조선은 중국, 일본 외에는 거의 교류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행은 세계 여러 곳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통로였어요. 특히 연행에 참여한 학자들이 청에 와 있던 서양 선교사들을 만나면서 서양의 과학과 기술 문물, 그리고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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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간 사신과 선교사들이 만나기 시작할 무렵 조선에도 서양인이 나타났어요. 17세기는 주로 네덜란드 사람들이 먼 항해를 통해 중국이나 일본과 무역을 하였어요. 이들은 주로 은, 도자기, 비단 등을 얻고자 했어요. 일본을 오가던 배 중 일부가 풍랑을 만나 조선 땅으로 표류해 오는 경우가 생겼어요. 벨테브레와 하멜이 대표적인 경우였어요.


지금의 경주 부근에 표류해 온 벨테브레는 이름도 ‘박연’으로 바꾸고 조선 여인과 결혼하여 조선에 정착을 했어요. 반대로 조선 조정도 벨테브레에게서 서양식 화포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지요.


한편, 하멜 일행은 제주도에 표류해 왔어요. 제주 목사(지금의 군수)는 이들을 처음 본 그 때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 사람들은 눈이 파랗고, 코가 높고, 머리가 노랗고, 수염이 짧습니다. … 알록달록하고 치렁치렁한 옷을 입은 것이 우리와는 풍습이 크게 다른 것 같습니다.


하멜은 조선에 붙잡혀 있다 13년 만에 일본으로 탈출해 네덜란드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하멜표류기』를 써서 조선의 모습을 서양에 알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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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와 조총을 개량하는 벨데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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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 항해로




연행을 통해 조용하게 전래된 서양 문물은 조선의 여러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특히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서양 학문인 서학을 연구하고 조선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생겨났어요.


학자들의 관심을 가장 먼저 끈 것은 서양의 천문학과 지리학이었어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회전하고 있다는 지동설도 이때 전해졌어요. 그리고 조선의 학자들은 태양의 움직임을 관측하여 1년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서양식 방법을 이용해 조선의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어요.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만든 ‘곤여만국전도’라는 세계지도와 지도 제작법이 전래되면서 조선인들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던 생각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사람의 힘을 적게 쓰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과학 기구에 대한 관심도 많았어요. 과학 원리를 이용해 돌과 같은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사용하는 거중기를 만들었어요. 수원 화성도 거중기를 이용하여 더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지요.


실학자들은 농업, 상업, 공업 등 조선의 여러 산업들을 서양 문물을 이용해 더욱 발전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풍족해지고, 나라는 더욱 부강해지길 꿈꿨어요.


하지만 연행을 통해 시작된 서양 문물에 대한 관심은, 조선이 18세기 후반 백성들이 천주교 믿는 것을 금지하면서 점차 줄어들었어요. 처음에 하나의 새로운 학문으로 연구되던 서양 문물이 천주교란 종교의 모습으로 백성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문제가 생겨났기 때문이에요.


유교를 근본으로 나라를 세운 조선에서 조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천주교 신자 중 일부는 조상을 모신 사당을 없애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어요. 또한 실학자 중 일부가 천주교를 믿는 사실이 밝혀지자 조선 정부는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어요.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서양 문물 도입을 금기시 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그러면서 서양 문물을 연구하여 조선 사회에 적용하려는 노력도 점차 줄어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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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중기

수원화성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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