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서민 문화

판소리와 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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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는 도시가 성장하고 상업이 발달했어요. 그리고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시장이 열려 상품을 팔고 사기 시작했지요. 시장에서는 상품의 유통 뿐 아니라 문화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어요. 특히, 시장 한복판에서는 판소리와 탈출 공연이 행해지곤 했답니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북장단에 맞추어 창(노래)과 아니리(말) 등으로 연기하는 공연이에요. 아마도 영조 임금 이전 시기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세기에 이르러 신재효가 여러 종류의 판소리를 여섯 마당으로 정리하였어요. 그런데 현재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만 전해지고 있어요.


판소리에도 서민들의 사회 비판 의식이 잘 나타나 있어요. 「춘향가」에는 관리가 백성을 괴롭히는 모습, 「흥보가」에는 큰아들이 모든 재산을 물려받아 동생 가족에게 횡포를 부리는 모습이 담겨 있지요. 이를 통해 조선 후기에 농민들이 부자 농민과 가난한 농민 등으로 나뉜 모습과 신분제가 흔들리고 있는 모습 등을 엿볼 수 있어요.


판소리는 처음에는 서민들이 즐기던 문화였지만, 점차 양반들에까지 인기를 끌면서 그 내용도 변해갔어요. 판소리의 노랫말에 양반들에게 맞는 한문 투의 표현이 많아지기도 했고, ‘임금에 대한 충성, 부모님에 대한 효도,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리’처럼 양반들이 강조하는 유교 윤리가 더 많이 반영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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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도」 중 판소리 모습

문화유산채널




조선 후기에는 탈을 쓰고 공연하는 탈춤(탈놀이)도 전국 각지에서 유행하였어요. 탈춤은 광대라고 불린 놀이꾼들이 탈을 쓰고 재미있는 이야기, 춤, 노래, 연기를 하며 벌이는 공연을 뜻해요. 지금의 연극과 비슷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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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 별신굿 탈춤

안동하회마을보존회




주로 당시 양반에 대한 풍자나 불교에 대한 비판 등이 주제였고, 안동의 하회 별신굿 탈춤, 황해도의 봉산 탈춤과 강령 탈춤, 북청의 사자놀이 등이 유명하였어요. 한편, 당시 광대들은 상인과 연계하여 장터 마당에서 솟대타기, 줄타기 등의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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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가면극과 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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