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을 손에 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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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7월 어느 날, 전형필이 한남서림에 앉아 있는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중개인이 눈에 띄었어요. 전형필은 그를 불러 무슨 일로 그리 바삐 가느냐고 물었어요.
“경북 안동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 주인이 천 원을 부르지 뭡니까? 그래서 돈을 구하러 가는 길입니다.”
전형필은 이 소식이 조선 총독부에 알려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의 말과 글도 못 쓰게 하며 탄압하는 일제가 분명 한글 제작 원리 등을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빼앗으려고 할 테니 말이에요. 그는 어떻게든 『훈민정음 해례본』을 먼저 손에 넣으려고 했어요.
“책 주인에게 만 원을 주고, 천 원은 수고비로 받으시오.”
“책 가격이 천 원인데 만 원이라고요?”
“그런 보물은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겠소?”
『훈민정음 해례본』을 손에 넣은 전형필은 그것이 세상에 전해진다는 사실 자체를 비밀로 했어요. 일제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말이에요. 꼭꼭 숨겨 두었다가 광복 이후에야 세상에 내놓았지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문화재청
전형필은 자신이 수집한 여러 가지 보물 중 훈민정음을 가장 귀하게 여겼어요. 6‧25 전쟁이 나자 어쩔 수 없이 문화유산들을 그대로 두고 피난을 가야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만은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챙겨갔어요. 피란길에도 잃어버릴까봐 가슴에 품고 다녔고, 잠을 잘 때는 베개 속에 넣고 잤다고 해요.
전형필이 일제의 감시와 전쟁으로부터 훈민정음을 지켜낸 덕분에 우리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알 수 있었지요. 왜 우리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인지도 정확히 알 수 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