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탑

기구한 운명의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컨텐츠 정보

본문

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54172_1851.JPG
경복궁에 있을 때의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내부에 있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문화재청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몸돌에 기록된 글을 보면, 이 탑이 고려 말 원나라 황제의 복을 빌기 위해서 지어졌다고 해요. 왜 우리나라 석탑이 원나라 황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요?

고려는 1231년부터 1270년까지 대략 40년 동안 세계 최강국이었던 몽골과 전쟁을 벌였어요. 당시 고려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몽골과의 항쟁을 이어 나갔어요. 결국 고려는 몽골의 요구를 받아들여 강화를 맺었어요. 그 결과 고려는 왕실이 유지되었지만 한동안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되었지요. 이 시기를 원 간섭기라고 해요. 원 간섭기에는 몽골의 풍속도 고려에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를 몽골풍이라고 해요. 고려의 풍속도 원나라에 유행하였는데, 고려양이라고 하지요.


당시 원나라에서 출세한 고려 사람 가운데 강융과 고용봉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들은 개성 근처에 원나라 황제의 복을 빌기 위해 원나라 탑 형식으로 탑을 만들었어요. 이 탑이 바로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이에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탑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강암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석탑은 원나라에서 유행한 대리석으로 만들었어요. 탑의 층수도 전통적인 홀수가 아닌 짝수로 되어 있어요. 탑의 모양 역시 기존의 탑과는 많이 달라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이후에 많은 수난을 겪게 돼요. 이 탑은 원래 경기도 개풍군(현재 북한 개성시)의 경천사에 있었어요. 그런데 1907년에 대한 제국을 방문한 일본의 고위 관리였던 다나카 미츠아키는 이 탑에 엄청난 욕심을 부렸어요. 그는 자신이 고종 황제로부터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선물로 받았다고 하면서 일본 도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지고 가버렸어요. 물론 새빨간 거짓말로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범죄 행위이지요. 그러나 당시 대한 제국의 국력이 약했어요. 그래서 대한 제국 정부에서 돌려달라는 이야기를 해도 일본의 높은 관리였던 다나카 미츠아키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돌려받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어요. 바로 대한 제국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베델과 미국인 헐버트가 특히 탑의 반환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지요. 베델은 자신이 발행하던 신문 〈대한매일신보〉에서 일본의 대한 제국 침략을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어요. 그는 당시 대한 제국에서 발행되던 영자 신문인 〈코리아데일리뉴스(Korea Daily News)〉에 일본인이 불법적으로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몰래 가져갔다고 고발하는 기사를 썼어요. 또한 이 탑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도 신문에 실었어요.

헐버트는 1905년 을사늑약이 일제의 강요로 부당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한 제국의 독립을 위해 애쓴 미국인이에요. 그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약탈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에 있는 영자 신문에 이 소식을 고발하는 기사를 썼어요. 그리고 탑을 돌려보내야 한다고 일본 사람들에게 호소했어요.


1910년 대한 제국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어요. 이후에도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반환받으려는 노력은 이어졌고, 마침내 1918년에 국내에 돌아오게 되었어요. 그러나 탑은 원래 있던 곳이 아닌 경복궁으로 돌아왔는데, 이후 40여 년 동안 돌아올 때의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방치되었어요. 195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포장을 뜯고 1년 동안 복원 공사를 했어요. 당시 복원 공사는 훼손된 곳을 시멘트로 채워 넣는 부실한 공사였지요. 게다가 그 이후 오랫동안 경복궁 뜰에 전시되면서 비바람과 산성비로 인해 탑이 점점 더 훼손이 되었어요. 결국 1995년 다시 복원 공사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우선 1959∼1960년 공사 때 채워 넣었던 시멘트를 제거하고, 레이저를 이용해 표면의 오염물도 닦아 냈어요. 심하게 손상된 곳은 64개의 새로운 대리석으로 교체했어요. 복원 공사는 10년 간 이어졌고, 드디어 2005년에 복원 공사를 마무리했지요. 이후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내부로 옮겨져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어요.

여러분도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아파트 5층 높이의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웅장한 모습을 한 번 살펴보세요. 참, 탑의 안내문에 포함된 베델과 헐버트의 헌신적인 노력에 대한 글도 읽어보도록 해요.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했던 외국인들의 노력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 거예요.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6 / 1 페이지
RSS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