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탑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컨텐츠 정보

본문

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53932_9045.JPG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과 탑의 내부에 들어 있던 은제 도금 여래 입상

문화재청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평창 월정사는 신라 선덕 여왕 때 승려 자장에 의해 임시 암자로 만들어졌다가 후에 제대로 된 사찰로 바뀌었어요. 세월이 흘러 1950년에 이르러 평창 월정사는 불행한 일을 겪게 돼요. 안타깝게도 6·25 전쟁으로 인해 사찰 건물이 불탔어요. 당시 사찰을 태운 불은 석탑에까지 피해를 입혔어요.


이후 1970년에 석탑을 전면 해체해서 다시 보수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어요. 보수 작업 중 석탑 안에서 은으로 도금한 불상인 은제 도금 여래 입상이 발견되었어요. 또 수정으로 만든 사리병을 포함해 총 12개의 유물이 발견되었지요.

2000년에는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주변을 발굴 조사했어요. 3년 동안 이어진 발굴 조사 결과 석탑 아래 땅 속에서 중국 송나라 때 사용된 동전이 여러 개 발견되었어요. 동전은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져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도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또한 발굴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기와를 통해 월정사가 조선 세종 때와 광해군 때 수리를 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답니다.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은 높이 15.2m이며, 돌의 모양이 8각형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또한 신라 시대에 유행한 3층탑이 아니라 무려 9층탑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면 왜 탑이 4각형이 아닌 8각형으로 만들어졌을까요?


고려 시대에는 이전 시대와 달리 4각형이 아닌 다각형으로 만들어지고 층수도 3층보다는 여러 개의 층으로 된 석탑이 유행했어요. 이러한 형식은 특히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북부 지방에서 유행했다고 해요. 따라서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은 고려 시대의 다각다층탑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지요.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6 / 1 페이지
RSS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