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현종의 효심이 담긴 개성 현화사 7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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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현종은 고려의 여덟 번째 왕으로 태조 왕건의 손자였어요. 그는 아버지 왕욱과 어머니 헌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이름은 왕순이었어요. 아버지 왕욱이 왕이 아니었기에 왕순도 세자가 아닌 여러 왕족 중의 한 명일 뿐이었지요. 왕순은 어릴 때 불행을 많이 겪었어요. 어머니는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귀양을 갔어요. 그래서 왕순은 어려서부터 보모의 손에서 자랐어요. 몇 년 후 왕순의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어요.
왕순의 불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당시 제7대 임금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가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자신의 또 다른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자객을 보내 왕순을 죽이고자 했어요. 이처럼 왕순은 왕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의 싸움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뻔 한 적이 여러 번이었어요.
1009년 왕순이 열 여덟살이 되었을 때, 강조라는 신하가 정변을 일으켰어요. 왕순은 강조에 의해 고려의 제8대 임금(현종)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요. 고려 현종은 거란의 침입으로 나주까지 피난 가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어요. 그러나 강감찬의 귀주 대첩 등을 통해 거란의 침입을 물리쳤어요. 이후 현종은 백성의 세금을 합리적으로 걷고, 농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는 등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노력했어요.
한편 현종은 불교를 장려하는 정책도 펼쳤어요. 한동안 중단되었던 연등회와 팔관회를 다시 열었어요. 또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개경 근처에 현화사라는 사찰을 지었어요. 그리고 사찰 안에 현화사 7층 석탑을 세웠어요.
의 기초가 되는 단)이 한 층 있고, 그 위로 일곱 층의 탑신(탑의 기단과 머리 부분 사이에 있는 탑의 몸체)이 올려져 있어요. 탑신 위에는 탑머리도 있지요. 탑의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몸돌의 크기가 비례해 줄고, 각 층의 지붕돌이 비교적 얇고 처마를 길게 빼고 있어서 아주 경쾌한 느낌을 주지요.
특히 현화사 7층 석탑에서 돋보이는 것은 1층 몸돌 부분이에요. 6명의 보살(불교에서 지혜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과 동자들(어린 소년들), 2명의 사천왕(불교의 수호신)이 부처님을 둘러싸고 조각되어 있어요. 마치 이들이 가운데에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모습처럼 생동감이 넘쳐요.
개성 현화사 7층 석탑과 탑의 1층 몸돌에 새겨진 부처님, 6명의 보살과 동자들의 모습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