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몽골의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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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몽골 사이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토가 황폐해지고 백성의 고통이 심해졌어요. 또한 황룡사 9층 목탑이 불타는 등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어요. 이처럼 피해가 커지자 몽골과 강화를 해서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김준이 실권을 쥐고 있던 최의를 죽임으로써 최씨 무신 정권이 무너지게 되었어요(1258년).
이듬해에 고려는 몽골과의 강화를 맺기 위해 태자(훗날 원종)를 몽골로 보냈어요. 그런데 고려의 태자가 몽골로 가던 도중 몽골의 황제인 대칸(몽케 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설상가상으로 다음 대칸의 자리를 놓고 몽케 칸의 두 동생 쿠빌라이와 아릭 부케가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 전개되었어요. 이에 고려의 태자는 누구를 만나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였어요. 고민 끝에 고려의 태자는 쿠빌라이를 찾아갔어요. 이에 쿠빌라이는 크게 기뻐하며 고려의 태자를 맞이하였어요.
고려는 만 리나 되는 나라이다. 일찍이 당 태종이 친히 공격하였어도 항복을 받지 못하였는데 지금 그 세자가 나에게 왔으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
이에 고려의 태자는 쿠빌라이에 다음의 조건을 들어주면 강화를 하겠다고 요청하였어요.
- 고려의 풍속은 바꾸지 않는다.
- 조정에서 파견한 사람만 고려에 가고 다른 세력의 사신은 금지한다.
- 개경 환도는 고려가 국력을 회복한 후에 한다.
- 몽골군은 가을을 기한으로 압록강 밖으로 철수한다.
- 설치하였던 다루가치는 모두 돌아오게 한다.
쿠빌라이는 고려 태자의 강화 조건을 받아들였어요.
한편, 4년간의 내란 끝에 몽골의 대칸 자리는 쿠빌라이가 차지하게 되었어요. 이에 따라 고려는 몽골이 침략·정복했던 다른 지역과 달리 나라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고유의 제도와 풍속을 고치지 않아도 되었어요.
비록 고려와 몽골 사이의 전쟁은 끝났지만, 권력을 잡고 있던 무신들의 반발 때문에 정부는 개경으로 돌아오지 못하였어요. 이로부터 10여 년 뒤에 고려 왕실과 조정은 강화도를 떠나 다시 개경으로 돌아오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