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궁지

승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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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평문은 고려궁지의 남쪽 문이자 정문으로 조선 시대 경복궁의 광화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승평문은 모두 3개의 문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문은 오직 왕만이 행차할 때에 사용하였어요. 왕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가운데 문이 아닌 양쪽의 문을 사용하였지요.

고려 고종이 죽은 뒤 다음 해 태자(후에 원종 임금)가 몽골과 화친을 맺은 뒤 개경으로 떠날 때 승평문의 가운데 문을 지나갔어요.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예전에 없던 일이라고 하여 특별히 『고려사』라는 역사책에 기록되었다고 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의 승평문은 고려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조선 시대의 건물이에요. 승평문 안에 들어가도 고려 시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청나라가 강화도까지 침략하였을 때 조선군과 청나라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인해 승평문 등 여러 건물이 부서지고 말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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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평문

강화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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