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 유적

당에 만들어진 신라인의 마을, 신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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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 당 무령군의 소장이 된 평민 출신 장보고, 당의 과거에 급제해 관리가 된 최치원. 이들을 알고 있나요? 이들은 모두 신라 출신으로 당에서 성공한 인물들이죠. 수에 이어 중국을 차지한 당이 가장 발전했을 때에는 다른 나라의 인재를 받아들이고, 많은 나라와 적극적으로 교류하였어요.

전성기를 맞이하였던 당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중국에 정착하는 것도 허용했고, 다른 나라의 종교나 문화에도 너그러웠어요. 신라를 비롯해 인도, 페르시아, 아랍, 발해, 일본, 돌궐(튀르크)로부터 많은 사람이 당으로 왔어요. 학문을 배우러 온 유학생, 불법을 배우러 온 승려, 외교 관계를 맺으러 온 사신이 당의 수도 장안으로 몰려들었어요.


그중에서도 상인이 가장 많았어요. 비단길을 비롯한 무역로를 통해 가장 귀한 물건을 싣고 장안에 온 상인들은 도자기와 비단을 비롯한 당의 진귀한 물건을 사 갔어요. 많은 신라 사람도 무역을 위해 당으로 이주해 왔어요. 신라인들은 당의 허가를 받아 주로 중국의 동쪽 해안을 따라 모여 살았어요.


신라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을 신라방이라고 불렀어요. 신라방의 사람들은 배를 수리하고 제작하며 농사도 짓고, 도자기와 숯, 소금을 만들며 살았어요. 요즘 전 세계에 퍼져있는 우리 동포들이 모여 사는 코리아타운과 같죠. 청해진이 세워지기 전에 이미 당에는 신라방을 중심으로 많은 신라 사람이 무역을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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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에 만들어진 신라방 풍경(독립기념관)




신라방에는 사신이나 상인, 유학생의 숙소로 이용한 신라관, 선원들의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던 사찰 신라원이 있었어요. 신라 사람들이 낯선 당에 도착하면 신라방의 여러 시설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당의 장교를 지낸 신라인 장보고가 청해진을 세우고 강한 수군으로 서남해 무역로를 차지하자, 신라방은 신라와 일본을 연결하는 더욱 중요한 무역항이 되었어요. 장보고의 무역선이 신라방에 도착하면 당의 상인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상인들도 찾아와 서로 물건을 사고팔았어요. 신라방은 장보고가 해상무역을 장악할 때 중요한 토대가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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