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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사(KOREAHISTORY) &amp;gt; 고대사 &amp;gt; 청해진 유적</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cheonghaejintrace</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청해진 유적 (2025-05-11 15:56:3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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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신라의 국력을 약하게 만든 무역품</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cheonghaejintrace/5</link>
<description><![CDATA[<p>삼국을 통일하고 전쟁이 없는 평화 시기를 맞이한 신라는 세계와 교류하며 더욱 발전해 갔어요. 하지만 장보고가 활동했던 시기를 전후해 신라에 큰 위기가 닥쳤어요. 그것은 수십 년간 계속된 가뭄과 흉년이었어요. 흉년으로 곡식 수확량이 크게 줄었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산으로 들어가 산적이 되고, 바다로 나가 해적이 되었어요.</p><p><br /></p><p>빈곤한 백성들이 늘어가며 사회는 혼란스러워졌어요. 이에 반해 귀족들은 백성들의 삶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욕심대로만 살았어요. 귀족들은 국제무역을 통해 신라에 들어온 진귀한 물건에 빠져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어요.</p><p>귀족들의 사치품 중에는 당에서 온 비단이나 도자기뿐만 아니라 공작 꼬리와 물총새의 털로 만든 목도리, 에메랄드와 바다거북 등껍질로 만든 빗, 침향과 자단과 같은 고급 나무, 향신료 등 동남아시아와 서역에서 온 것들도 많았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6552_5319.JPG" title="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6552_5319.JPG" alt="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6552_5319.JPG" /><br style="clear:both;" />바다거북 등껍질로 만든 장식빗</p><p>한국학중앙연구원</p><p><br /></p><p><br /></p><p><br /></p><p>백성이 사치와 호화를 다투어 오직 외래 물건의 진기함을 떠받들고 도리어 우리 것을 혐오한다. 이로써 예절이 무시되고 풍속이 쇠퇴하고 있으니 고의로 법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형벌이 있을 것이다.</p><p>흥덕왕은 사치품에 빠진 귀족들에게 교서를 내려 조심할 것을 당부했어요. 임금이 교서를 내릴 만큼 사치품에 빠진 귀족들은 신라를 위태롭게 만들었지요. 일반 백성들은 먹을 게 없어 굶주렸지만, 귀족들은 자신들의 사치를 위해 농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땅을 빼앗아 자신의 농장으로 만들었어요.</p><p><br /></p><p>귀족들의 수탈과 비참한 생활에 불만을 품은 많은 농민이 전국에서 난을 일으켰어요. 농민들의 난은 결국 신라의 멸망으로 이어졌어요. 신라 멸망에는 백성들의 삶을 외면한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죠.</p><p><br /></p><p>청해진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와 교류하며 신라는 크게 번성하였어요. 하지만 백성들을 생각하지 않는 귀족들의 사치로 신라는 쇠퇴하게 되었죠. 세상의 모든 나라와 자유롭게 교류하는 지금, 우리나라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11T15:56:32+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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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장보고가 사용한 무역선은 어떻게 생겼을까?</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cheonghaejintrace/4</link>
<description><![CDATA[<p>우리나라 서남해안은 수심이 얕고 갯벌이 넓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 배들은 갯벌에 정박하기에 편하고, 암초와 부딪쳐도 파손되지 않게 배 바닥을 단단한 나무로 평평하게 이어 붙여 만들었어요. 조선 시대 가장 큰 전함이었던 판옥선의 바닥도 평평했죠.</p><p><br /></p><p>바닥이 평평한 모양의 평저선은 육지를 따라 가까운 바다를 항해할 때는 편리했어요. 하지만 속도가 빠르지 않고 높은 파도에 뒤집힐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먼바다로의 항해에는 알맞지 않았어요.</p><p><br /></p><p>해상무역이 발달하면서 신라인의 배 만드는 기술도 점차 발달했어요. 통일신라 시대에 배 만드는 기술은 당보다도 앞섰어요. 당에 있는 신라방의 신라인들은 뛰어난 기술로 배의 수리와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신라는 일본에 사람을 보내 배 만드는 기술을 전해주기도 했지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6382_9381.JPG" title="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6382_9381.JPG" alt="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6382_9381.JPG" /><br style="clear:both;"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기 견당무역선을 복원한 모습(전쟁기념관)</p><p><br /></p><p><br /></p><p><br /></p><p>신라의 발달한 선박 제조 기술을 이용해 장보고는 큰 바다로 나아가 파도를 헤치고 빠른 속도로 항해할 수 있는 배를 만들었어요. 큰 파도에 배가 파손되지 않게 옆면은 목재끼리 겹쳐 이어서 나무쐐기로 고정해 만들었어요. 배의 앞에서 뒤까지 여러 개의 칸막이를 만들었는데, 만약 구멍이 나서 배에 물이 새어 들어와도 금방 침몰하지 않고 항해할 수 있었어요.</p><p>당의 기록에는 신라 배는 작지만 날렵하고 강하다는 평가가 남아 있어요. 먼바다를 항해하는 무역선은 웅장하고 안정성이 뛰어나 아라비아와 일본 사람들이 타는 것을 좋아했다는 기록도 보여요. 먼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튼튼하고 빠른 배를 이용해 장보고는 동북아시아 국제무역을 주도할 수 있었지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11T15:53:1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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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당에 만들어진 신라인의 마을, 신라방</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cheonghaejintrace/3</link>
<description><![CDATA[<p>『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 당 무령군의 소장이 된 평민 출신 장보고, 당의 과거에 급제해 관리가 된 최치원. 이들을 알고 있나요? 이들은 모두 신라 출신으로 당에서 성공한 인물들이죠. 수에 이어 중국을 차지한 당이 가장 발전했을 때에는 다른 나라의 인재를 받아들이고, 많은 나라와 적극적으로 교류하였어요.</p><p>전성기를 맞이하였던 당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중국에 정착하는 것도 허용했고, 다른 나라의 종교나 문화에도 너그러웠어요. 신라를 비롯해 인도, 페르시아, 아랍, 발해, 일본, 돌궐(튀르크)로부터 많은 사람이 당으로 왔어요. 학문을 배우러 온 유학생, 불법을 배우러 온 승려, 외교 관계를 맺으러 온 사신이 당의 수도 장안으로 몰려들었어요.</p><p><br /></p><p>그중에서도 상인이 가장 많았어요. 비단길을 비롯한 무역로를 통해 가장 귀한 물건을 싣고 장안에 온 상인들은 도자기와 비단을 비롯한 당의 진귀한 물건을 사 갔어요. 많은 신라 사람도 무역을 위해 당으로 이주해 왔어요. 신라인들은 당의 허가를 받아 주로 중국의 동쪽 해안을 따라 모여 살았어요.</p><p><br /></p><p>신라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을 신라방이라고 불렀어요. 신라방의 사람들은 배를 수리하고 제작하며 농사도 짓고, 도자기와 숯, 소금을 만들며 살았어요. 요즘 전 세계에 퍼져있는 우리 동포들이 모여 사는 코리아타운과 같죠. 청해진이 세워지기 전에 이미 당에는 신라방을 중심으로 많은 신라 사람이 무역을 하고 있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6230_5827.JPG" title="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6230_5827.JPG" alt="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6230_5827.JPG" /><br style="clear:both;" />당에 만들어진 신라방 풍경(독립기념관)</p><p><br /></p><p><br /></p><p><br /></p><p>신라방에는 사신이나 상인, 유학생의 숙소로 이용한 신라관, 선원들의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던 사찰 신라원이 있었어요. 신라 사람들이 낯선 당에 도착하면 신라방의 여러 시설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p><p><br /></p><p>당의 장교를 지낸 신라인 장보고가 청해진을 세우고 강한 수군으로 서남해 무역로를 차지하자, 신라방은 신라와 일본을 연결하는 더욱 중요한 무역항이 되었어요. 장보고의 무역선이 신라방에 도착하면 당의 상인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상인들도 찾아와 서로 물건을 사고팔았어요. 신라방은 장보고가 해상무역을 장악할 때 중요한 토대가 되었지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11T15:50:5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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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청해진, 동북아시아 해상무역의 중심에 서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cheonghaejintrace/2</link>
<description><![CDATA[<p>가야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김수로왕의 왕비가 인도 출신 공주였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신화 속 이야기라 모든 것을 사실이라 믿을 수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멀리 떨어진 인도와 우리나라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p><p><br /></p><p>먼 옛날 세계 여러 나라는 초원길이나 비단길 등 육로를 통해 왕래했어요. 사람들이 점차 많은 사람과 물건을 실을 수 있는 큰 배를 만들 수 있게 되자 바닷길도 이용했어요. 첫 바닷길은 육지를 따라 항해하는 것이었죠. 먼 바다로 나갔을 때 큰 파도에 배가 파손되거나 뒤집히는 것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어요.</p><p><br /></p><p>삼국 시대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 일본과 많은 교류를 했어요. 처음에 사신과 상인들은 배를 타고 대마도를 징검다리 삼아 육지를 따라 항해를 했어요. 그러다가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먼바다의 거친 파도를 헤쳐 항해할 수 있는 튼튼한 배를 만들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라 사이에 가까운 항로를 개척하면서 더 적은 시간으로 세 나라를 왕복할 수 있게 되었지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866_1538.JPG" title="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866_1538.JPG" alt="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866_1538.JPG" /><br style="clear:both;" />신라의 해상 교역로</p><p><br /></p><p><br /></p><p><br /></p><p>신라가 당과 연합해 삼국을 통일한 후 더 많은 배들이 중국과 일본을 오갔어요. 당·신라·일본을 잇는 바닷길 가운데 길목에 청해진이 있었어요. 장보고는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의 장도(장군섬)를 중심으로 청해진을 만들었어요.</p><p>장도는 육지 가까이에 있는 섬이라 바다로 접근하는 배들을 모든 방향에서 살펴볼 수 있고, 수심이 깊어 큰 배가 정박하기에도 편리했어요. 또한 장도 앞의 많은 섬이 태풍으로 생긴 높은 파도를 막아주어 항구로도 좋은 위치에 있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903_6795.JPG" title="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903_6795.JPG" alt="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903_6795.JPG" /><br style="clear:both;" />장도의 목책</p><p>국립문화재연구소</p><p><br /></p><p><br /></p><p><br /></p><p>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요새였던 장도에 장보고는 외성과 내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대비했어요. 그리고 장도 둘레 갯벌에 나무 기둥을 박아 해적의 배가 섬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죠, 장도의 가장 높은 곳에는 망대를 세워 해적의 배나 당과 일본을 오가는 배들을 감시했어요.</p><p>청해진을 만든 장보고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서남해 무역로를 위협하는 해적을 없애는 일이었어요. 해적을 모두 제압한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의 적산과 일본 하카다 등에 무역 거점을 만들고 여러 나라 상인과 무역을 하였어요.</p><p><br /></p><p>청해진은 국제적인 무역항구답게 다양한 물건을 취급했어요. 당의 비단, 약재, 공예품, 도자기, 서적과 서역의 향료, 상아, 보석류, 카펫, 유리 제품까지 거래했어요. 일본에서는 금과 명주 등을 들여와 팔았죠.</p><p><br /></p><p>신라의 수출품은 주로 금, 은, 비단, 세공품, 그리고 인삼과 같은 약재였어요. 향료나 낙타, 불상 등 진귀한 물건은 당으로부터 수입해서 다시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어요.</p><p><br /></p><p>청해진에서 가져간 물건은 당과 일본에서 매우 비싼 가격으로 팔렸어요. 때로는 웃돈을 주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까지 있을 만큼 인기가 많았지요.</p><p><br /></p><p>청해진은 당과 일본 사이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물건을 싸게 사서 다른 나라에 비싸게 파는 중계 무역을 했어요. 청해진에는 당과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했지요. 강한 수군을 거느리고 있던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지배하며 강력한 해상왕국을 만들었어요.</p><div><br /></div><div><br /></div><div><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969_9094.JPG" title="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969_9094.JPG" alt="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969_9094.JPG" /><br style="clear:both;" /> </div>]]></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11T15:46:17+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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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9세기 동북아시아 국제무역항, 청해진</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cheonghaejintrace/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281_8124.JPG" title="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281_8124.JPG" alt="111acb7bfd29a6c777dacb3b5ca5c488_1746945281_8124.JPG" /><br style="clear:both;" />장도 청해진 유적지(전남 완도군)</p><p>완도군청</p><p><br /></p><p><br /></p><p><br /></p><p>“폐하! 허락하신다면 청해진을 만들어 해적을 소탕하겠나이다.”</p><p><br /></p><p>“허락하오. 장군은 군사를 모아 해적을 막고 백성들을 구하라.”</p><p><br /></p><p>임금의 허락을 받은 장보고는 청해진을 만들었어요. 청해진은 원래 해적을 막기 위한 수군 기지였어요. 청해진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수군 기지로 출발한 청해진은 또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11T15:34:5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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