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 동북아시아 해상무역의 중심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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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김수로왕의 왕비가 인도 출신 공주였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신화 속 이야기라 모든 것을 사실이라 믿을 수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멀리 떨어진 인도와 우리나라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먼 옛날 세계 여러 나라는 초원길이나 비단길 등 육로를 통해 왕래했어요. 사람들이 점차 많은 사람과 물건을 실을 수 있는 큰 배를 만들 수 있게 되자 바닷길도 이용했어요. 첫 바닷길은 육지를 따라 항해하는 것이었죠. 먼 바다로 나갔을 때 큰 파도에 배가 파손되거나 뒤집히는 것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삼국 시대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 일본과 많은 교류를 했어요. 처음에 사신과 상인들은 배를 타고 대마도를 징검다리 삼아 육지를 따라 항해를 했어요. 그러다가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먼바다의 거친 파도를 헤쳐 항해할 수 있는 튼튼한 배를 만들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라 사이에 가까운 항로를 개척하면서 더 적은 시간으로 세 나라를 왕복할 수 있게 되었지요.
신라의 해상 교역로
신라가 당과 연합해 삼국을 통일한 후 더 많은 배들이 중국과 일본을 오갔어요. 당·신라·일본을 잇는 바닷길 가운데 길목에 청해진이 있었어요. 장보고는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의 장도(장군섬)를 중심으로 청해진을 만들었어요.
장도는 육지 가까이에 있는 섬이라 바다로 접근하는 배들을 모든 방향에서 살펴볼 수 있고, 수심이 깊어 큰 배가 정박하기에도 편리했어요. 또한 장도 앞의 많은 섬이 태풍으로 생긴 높은 파도를 막아주어 항구로도 좋은 위치에 있었어요.
장도의 목책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요새였던 장도에 장보고는 외성과 내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대비했어요. 그리고 장도 둘레 갯벌에 나무 기둥을 박아 해적의 배가 섬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죠, 장도의 가장 높은 곳에는 망대를 세워 해적의 배나 당과 일본을 오가는 배들을 감시했어요.
청해진을 만든 장보고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서남해 무역로를 위협하는 해적을 없애는 일이었어요. 해적을 모두 제압한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의 적산과 일본 하카다 등에 무역 거점을 만들고 여러 나라 상인과 무역을 하였어요.
청해진은 국제적인 무역항구답게 다양한 물건을 취급했어요. 당의 비단, 약재, 공예품, 도자기, 서적과 서역의 향료, 상아, 보석류, 카펫, 유리 제품까지 거래했어요. 일본에서는 금과 명주 등을 들여와 팔았죠.
신라의 수출품은 주로 금, 은, 비단, 세공품, 그리고 인삼과 같은 약재였어요. 향료나 낙타, 불상 등 진귀한 물건은 당으로부터 수입해서 다시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어요.
청해진에서 가져간 물건은 당과 일본에서 매우 비싼 가격으로 팔렸어요. 때로는 웃돈을 주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까지 있을 만큼 인기가 많았지요.
청해진은 당과 일본 사이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물건을 싸게 사서 다른 나라에 비싸게 파는 중계 무역을 했어요. 청해진에는 당과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했지요. 강한 수군을 거느리고 있던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지배하며 강력한 해상왕국을 만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