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유적

독립선언서가 인쇄된 곳은 어디일까? 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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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은 바로 독립선언서의 낭독과 함께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2만여 장이 넘는 독립선언서는 어떻게 일본 경찰에 발각되지 않고 인쇄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보성사라는 인쇄소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보성사 사장이었던 이종일은 2월 27일 직원들과 함께 2만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했어요. 다음날 승동교회에 모인 전문학교 학생 대표단들에게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고, 또 전국으로 전달되었어요.

그런데 그 사실 아세요? 3·1 운동 당시 배포된 독립선언서에는 ‘조선의 독립국’을 ‘선조의 독립국’ 이라고 거꾸로 인쇄되었다고 해요. 시간이 촉박해 활자판을 잘못 조판해 생긴 실수로 보고 있어요. 최근에는 독립선언서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독립 의지를 담아 작성한 선언문 등이 발견되고 있어요.


인쇄하는 도중 위험한 순간도 있었어요. 밤에 인쇄소에서 시끄러운 기계소리가 들리자 의심을 품은 한국인 출신 친일 경찰 신승희가 검문을 하러 왔어요. 이종일은 그의 옷자락을 잡고 사정을 했어요.


“당신도 우리나라 사람 아니요. 한번만 눈감아 주시오. 여기 이 돈이면 되겠소?”


이종일은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에게 받은 거금 5,000원을 주면서 사정했어요. 그 돈을 받는 친일 경찰이 눈감아 준 덕분에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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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사 터(서울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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