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돌아와 유한양행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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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은 1926년 10월 가족과 함께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왔어요. 미국에서 가져온 50만 달러의 재산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미국에서 약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회사인 유한양행을 차렸어요.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과 기생충, 피부병 등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던 유일한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거든요.
‘건강한 국민, 병들지 아니한 국민만이 주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유일한은 서재필이 선물로 준 목판화의 버드나무를 유한양행의 심볼로 삼았어요. 유한양행은 미국에서 피부약, 결핵약, 구충제 등을 수입해서 병원에 판매했어요. 뿐만 아니라 안티푸라민과 같은 약도 만들었어요. 평소 유일한은 다음과 같은 마음으로 기업을 경영했어요.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유일한은 이러한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1939년 11월 24일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바꾸고 주식을 종업원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또 새로 공장을 지을 때 종업원들을 위한 기숙사, 운동장, 수영장 등을 함께 만들었어요.
1930년대 유한양행은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와 중국, 베트남 등에 물건을 수출하며 그 규모가 점점 더 커졌어요. 유일한은 1938년 4월 사업을 더욱 키우기 위해 유럽과 미국을 돌아보러 떠났어요. 그런데 광복이 될 때까지 국내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나빠졌고, 일제가 미국에서 온 유일한이 만든 회사인 유한양행을 탄압했기 때문이지요.
다시 미국에 살게 된 유일한은 대학원에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그리고 1945년 1월에는 남몰래 미국의 냅코 작전을 지원했어요. 냅코 작전은 미국의 특수공작기관인 전략첩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이 한국인 특수공작원을 양성해 한반도의 인천, 황해도, 서산 등에 침투시키고 비밀조직을 만들려고 한 것이에요.
이를 위해 1944년부터 한국인 19명을 비밀리에 훈련 시켰는데, 유일한은 50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자원했던 것이지요. 이 작전은 일본이 1945년 8월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실행되지 못했어요.
냅코 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