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천태종을 창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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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이 고려로 돌아오자 왕은 성대하게 환영 잔치를 열어주었지요.


“이제 송에서의 배움을 바탕으로 고려 발전을 위해 힘써 주시오.”


“폐하, 그리 말씀해 주시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후 흥왕사를 책임지는 주지 스님이 된 의천은 함께 일할 승려들을 불러 모았어요. 그리고 많은 승려들과 함께 고려는 물론 송, 거란, 일본에 있는 수천 권의 불교 서적들을 수집했지요.

의천의 요청으로 1086년 흥왕사에 교장도감이라는 관청이 설치되었어요. 이후 의천은 이곳을 중심으로 불교 서적 목록을 정리하고 부처의 말씀이 담긴 경전에 대해 연구하고 해설한 글을 모은 『교장』도 편찬했어요.


불교를 널리 전하는데 대장경에 대한 연구서가 꼭 필요했기에 『교장』을 펴낸 거예요. 무려 10여 년에 걸쳐 진행된 일로, 동아시아 각국의 대장경 연구서를 모두 모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작업이었어요.


이후 의천은 국청사 주지 스님이 되었어요.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 수 천 명의 승려들이 국청사로 몰려들었어요. 의천은 이곳에서 고려의 천태종을 창시했어요. 천태종은 중국 불교 종파의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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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의 불교 통합




당시 고려의 불교는 불교 경전 공부를 더 중요시한 교종과 마음의 수양을 더 중요시한 선종으로 나뉘어져 갈등하고 대립했어요. 의천은 천태종을 창시해 두 종파를 통합하려 했지요.


불교 경전 공부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마음의 수양도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의천은 둘로 나뉘어져 대립하던 불교를 하나로 통합해 고려 불교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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