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특별했던 수원 화성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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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축조 현장

일꾼: 웬일로 저를 찾아 오셨나요?




학생: 수원 화성을 답사하고 나서 화성 건설에 참여하셨던 분을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거든요.


일꾼: 무엇이 그리 궁금해서입니까? 저는 건설의 총 책임자도 아니고 동원된 일꾼이었을 뿐인데.


학생: 그래서 더 만나 뵙고 싶었던 거예요. 수원 화성 건설이라는 큰 공사가 2년 8개월 만에 끝났다고 하던데, 포크레인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가능했나요?


일꾼: 포크레인은 없었지만, 정약용 선생이 만든 거중기와 녹로 등 신식 기구가 있지 않았습니까?


학생: 그게 그렇게 큰 역할을 했나요?


일꾼: 당연하죠. 무거운 돌덩이도 힘들이지 않고 들어 올려 옮길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기구입니까?

학생: 수원 화성이 예상보다 빨리, 또 성공적으로 완공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서요?


일꾼: 무엇보다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동원된 일꾼들에게 임금을 주니 더 힘을 내 열심히 일을 했지요. 또 공사 책임제를 실시해 각 건축물에 책임자의 이름과 벼슬을 새겼어요. 혹여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니 다들 최선을 다해 공사를 했겠지요?


학생: 그런 노력 덕분에 이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수원 화성이 건설된 것이군요. 덕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 된 것이고요.


일꾼: 나중에 전쟁이 일어나 수원 화성이 파괴되어도 다시 그대로 복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을 건설하는 과정을 그림과 글로 남겨 놓았거든요.


학생: 아,『화성성역의궤』 말씀하시는군요. 그 덕분에 6·25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화성을 다시 원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있었답니다. 오늘 수원 화성 공사와 관련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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