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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사(KOREAHISTORY) &amp;gt; 조선사 &amp;gt; 수원 화성</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suwonhwaseong</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수원 화성 (2025-05-07 12:07:31)</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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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수원 화성 건설의 일등 공신, 거중기와 녹로</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suwonhwaseong/8</link>
<description><![CDATA[<p>수원 화성의 건설 공사 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줄어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거중기와 녹로 때문이었어요. 거중기는 정약용이 중국의『기기도설』이라는 책을 참고해 만들어낸 기구예요.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기구랍니다. 수원 화성 건설 때 거중기는 1대가 사용되었대요. 왕실에서 직접 만들어 공사 현장으로 내려 보냈다고 하니, 정조가 얼마나 수원 화성 건설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지요?</p><p><br /></p><p>거중기와 함께 사용되었던 기구가 또 있어요. 바로 녹로지요. 이것도 정약용에 의해 발명된 기구에요. 성이나 집을 지을 때 이용된 기구로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물건을 높이 들어 올릴 수 있어요. 공사 기간을 줄이고 백성들의 힘을 덜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답니다.</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7202_0881.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7202_0881.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7202_0881.JPG" /><br style="clear:both;" />거중기와 녹로(수원화성박물관)</p><p><br /></p><p><br /></p><p><br /></p><p>조선 시대 성곽 건축의 꽃이라고 불리는 수원 화성을 살펴보니 왜 그렇게 불리는지 알겠죠? 특별한 시설과 아름다움을 갖춘 성을 짓기 위해 공사에 참여한 백성들의 땀방울도 느껴지나요? 수원 화성을 직접 답사하며 정조가 이곳에서 어떤 개혁 정치를 펼치고자 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7237_1345.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7237_1345.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7237_1345.JPG" /><br style="clear:both;" />『화성성역의궤』의 거중기</p><p>한국학중앙연구원</p><p><br /></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2:07:31+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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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특별했던 수원 화성 공사</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suwonhwaseong/7</link>
<description><![CDATA[<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976_6002.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976_6002.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976_6002.JPG" /><br style="clear:both;" />수원 화성 축조 현장</p><p>일꾼: 웬일로 저를 찾아 오셨나요?</p><p><br /></p><p><br /></p><p><br /></p><p>학생: 수원 화성을 답사하고 나서 화성 건설에 참여하셨던 분을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거든요.</p><p><br /></p><p>일꾼: 무엇이 그리 궁금해서입니까? 저는 건설의 총 책임자도 아니고 동원된 일꾼이었을 뿐인데.</p><p><br /></p><p>학생: 그래서 더 만나 뵙고 싶었던 거예요. 수원 화성 건설이라는 큰 공사가 2년 8개월 만에 끝났다고 하던데, 포크레인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가능했나요?</p><p><br /></p><p>일꾼: 포크레인은 없었지만, 정약용 선생이 만든 거중기와 녹로 등 신식 기구가 있지 않았습니까?</p><p><br /></p><p>학생: 그게 그렇게 큰 역할을 했나요?</p><p><br /></p><p>일꾼: 당연하죠. 무거운 돌덩이도 힘들이지 않고 들어 올려 옮길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기구입니까?</p><p>학생: 수원 화성이 예상보다 빨리, 또 성공적으로 완공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서요?</p><p><br /></p><p>일꾼: 무엇보다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동원된 일꾼들에게 임금을 주니 더 힘을 내 열심히 일을 했지요. 또 공사 책임제를 실시해 각 건축물에 책임자의 이름과 벼슬을 새겼어요. 혹여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니 다들 최선을 다해 공사를 했겠지요?</p><p><br /></p><p>학생: 그런 노력 덕분에 이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수원 화성이 건설된 것이군요. 덕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 된 것이고요.</p><p><br /></p><p>일꾼: 나중에 전쟁이 일어나 수원 화성이 파괴되어도 다시 그대로 복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을 건설하는 과정을 그림과 글로 남겨 놓았거든요.</p><p><br /></p><p>학생: 아,『화성성역의궤』 말씀하시는군요. 그 덕분에 6·25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화성을 다시 원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있었답니다. 오늘 수원 화성 공사와 관련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2:03:17+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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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화성에 임금이 머물 궁을 지은 이유는? 화성 행궁</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suwonhwaseong/6</link>
<description><![CDATA[<p>화성에는 행궁이 있어요. 행궁은 임금님이 밖으로 행차했을 때 머무는 궁이에요. 그런데 모든 성에 행궁이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답니다. 조선 시대에는 온양 행궁을 비롯하여 모두 5개의 행궁이 있었어요. 그중 가장 마지막에 세워진 것이 화성 행궁이에요.</p><p>이곳에 행궁을 지은 이유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에 행차할 때 머물기 위해서였지요. 정조는 화성 행궁을 다른 곳에 있는 것보다 큰 규모로 지었어요. 그 이유는 훗날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이 이곳에서 살려고 했기 때문이래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723_0709.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723_0709.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723_0709.JPG" /><br style="clear:both;" />수원 화성 행궁</p><p>문화재청</p><div><br /></div>]]></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1:59:29+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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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물길이 통과하는 문이 있다고? 화홍문</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suwonhwaseong/5</link>
<description><![CDATA[<p>화성에는 물길이 통과하는 두 개의 문이 있어요. 북수문과 남수문이지요. 북수문의 이름이 바로 화홍문이에요. 문 모양이 무지개처럼 생겨 화홍문이라고 불렀어요. 화홍문을 통과한 물은 수원성을 가로 질러 흐르지요.</p><p><br /></p><p>그런데 잘 들여다보세요. 다리 위 누각에 구멍이 보이지요. 바로 적이 쳐들어 올 때 공격할 수 있는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은 거랍니다.</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477_1629.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477_1629.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477_1629.JPG" /><br style="clear:both;" />화홍문</p><p>문화재청</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1:55:42+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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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왜 속이 텅 빈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공심돈</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suwonhwaseong/4</link>
<description><![CDATA[<p>우리나라 성곽 중 수원 화성에만 볼 수 있는 건축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공심돈이지요. 공심돈은 중국의 성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건축물이에요. 원래 수원 화성에는 공심돈이 세 개 있었는데, 지금은 두 개만 남아 있지요.</p><p><br /></p><p>앞에서 본 서북 공심돈은 높이가 약 13m인데 아래는 돌을 다듬어 쌓고 윗부분은 벽돌을 구워서 만든 것이 특징이에요. 안이 텅 빈 구조로 군사들이 안에서 밖의 적군을 살피며 화살이나 화포로 공격할 수 있게 만들었지요. 적의 공격에도 끄떡없이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구조예요. 수원 화성이 만들어진 후 이곳을 방문한 정조가 서북 공심돈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고 해요.</p><p>그런데 그 사실 아세요? 수원 화성은 적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인데, 화성을 쌓은 후에 이곳에서 실제로 전쟁이 벌어진 적은 없었답니다.</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325_9045.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325_9045.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325_9045.JPG" /><br style="clear:both;" />서북 공심돈 내부 모형(수원화성박물관), 동북 공심돈(문화재청)</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1:52:2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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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정문과 후문에 옹성을 쌓은 이유는? 장안문과 팔달문</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suwonhwaseong/3</link>
<description><![CDATA[<p>장안문과 팔달문은 수원 화성의 북쪽과 남쪽에 있는 문이에요. 둘 중 어떤 것이 정문일까요? 바로 북문인 장안문이에요. 장안문은 임금님이 한양에서 수원으로 행차할 때 가장 먼저 통과하게 되는 문이라 북쪽에 있는데도 정문이 될 수 있었지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063_5274.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063_5274.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6063_5274.JPG" /><br style="clear:both;" />옹성을 갖춘 장안문과 팔달문</p><p><br /></p><p><br /></p><p><br /></p><p>정문인 장안문과 남문인 팔달문은 특이한 모양을 한 성문이에요. 모두 항아리를 반으로 쪼개 놓은 것 같은 반원형의 옹성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그런데 왜 이런 특이한 구조의 옹성을 만든 것일까요?</p><p><br /></p><p>그것은 바로 적군이 성문 앞으로 다가오면, 성문 위와 옹성에서 동시에 공격하기 위해서였어요. 만약 옹성 안에 적군이 들어오면 독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였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1:48:0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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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정조, 수원 화성을 건설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suwonhwaseong/2</link>
<description><![CDATA[<p>정조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사도 세자)를 여의었어요. 아버지의 죽음을 본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컸지요. 그래서 그는 왕위에 오른 후에 아버지의 묘를 더 좋은 곳으로 옮기기로 했어요.</p><p><br /></p><p>정조는 화산에 아버지의 무덤인 현륭원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원래 화산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옮겨 살게 할 계획도시를 만들었는데, 그곳이 바로 화성이예요. 지금의 행정구역 명칭은 수원이지요.</p><p><br /></p><p>화성은 새로운 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정조의 꿈이 담긴 신도시였지요. 1794년(정조 18) 1월에 시작한 공사는 1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그런데 1796년(정조 20) 9월 초에 완공했어요. 3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처럼 빨리 완공할 수 있었을까요?</p><p><br /></p><p>그 이유는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를 비롯한 여러 기구들을 이용하고,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사 책임제 등을 실시한 덕분이었어요.</p><p><br /></p><p>정조는 화성이 한양과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상업 도시로 만들었어요. 상인들이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정책도 펼쳤어요. 나라에서 돈을 빌려주고, 상점도 만들어 주었지요. 또 백성들이 편안하게 농사지을 수 있도록 넓은 농장과 저수지도 곳곳에 만들었어요.</p><p>수원 화성은 정조의 개혁을 뒷받침하는 도시였어요. 정조는 수원에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군사들을 훈련시켰어요. 그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정치권력을 갖기 위해 서로 싸우고 견제하는 신하들의 대립을 조정하려고 했지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5817_4034.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5817_4034.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5817_4034.JPG" /><br style="clear:both;" />수원 화성 축조 모습</p><p><br /></p><p><br /></p><p><br /></p><p>수원 화성은 우리나라 성곽 건축의 꽃으로 꼽히는 건축물이에요. 봉돈, 공심돈, 암문과 같은 특별한 시설들을 갖추고 있어요. 각각의 건축물들은 기능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답니다.</p><p>화성은 우리나라의 전통 성곽 기술과 당시 외국의 성 쌓는 기술을 연구하고 그 장점만을 모아 만들어진 성이에요. 또한 수원 화성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읍성의 기능이 있으면서도 혹시라도 전쟁이 나면 방어할 수 있도록 여러 군사시설을 갖추었어요.</p><p><br /></p><p>정조는 공사가 마무리된 후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을 펴내도록 했어요. 화성 공사와 관련된 각종 기록을 모으로 정리한 것이죠. 이 책 덕분에 일부분이 무너지고 사라진 화성을 제대로 복원할 수 있었어요. 여러분들이 직접 가보면 언덕을 따라 성을 쌓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요. 곳곳에 벽돌을 이용해 쌓은 성곽의 모습도 볼 수 있고요.</p><p><br /></p><p>자, 지금부터 수원 화성의 특징을 살펴보고 얽힌 이야기에 대해서 알아볼까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5923_1287.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5923_1287.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5923_1287.JP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1:43:5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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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정조의 개혁 의지가 담긴 수원 화성</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suwonhwaseong/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5626_2864.JPG" title="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5626_2864.JPG" alt="47c9d295d07e47f6362028b31bc47db0_1746585626_2864.JPG" /><br style="clear:both;" />수원 화성(경기 수원시)</p><p>문화재청</p><p><br /></p><p><br /></p><p><br /></p><p>“수원 화성에서 큰 잔치가 열린다는군.”</p><p><br /></p><p>“잘하면 화성에 행차하시는 임금님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p><p><br /></p><p>“앞으로도 임금님께서 화성 근처에 있는 사도세자의 무덤에 자주 오실 테니, 뵐 기회가 더욱 많아지겠지.”</p><p><br /></p><p>수원 화성이 건설된 것은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 임금 때예요. 정조가 수원 화성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원 화성만의 특징은 어떤 것일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7T11:40:4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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