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독립의 상징, 독립문과 독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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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독립 공원 입구에는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 독립문이 세워져 있어요. 이 건물은 독립 협회라는 단체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1896년에 서재필은 개화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독립 협회를 만들었어요. 개화 사상이란 외국의 선진 문물을 들여와 우리나라를 이전보다 더 발달된 근대 국가로 만들자는 생각을 말하지요.
독립문
독립 협회는 우리나라가 강대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독립문을 세우고자 했어요. 그래서 많은 국민들의 지지 속에 독립문 세우는 데 필요한 돈을 모으는 운동을 펼쳤어요. 이러한 독립 협회의 뜻에 공감한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성금을 냈어요.
당시 고종 임금도 독립문을 세우는 데 성금을 보탰지요. 당당한 독립 국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바람을 담아 1896년 시작된 독립문 공사는 1898년에 마무리되었어요. 이때부터 독립문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죠.
그런데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독립문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독립문은 원래 영은문이라는 문이 있던 장소 근처에 세워졌어요. 영은문은 조선 시대에 큰 나라로 섬기던 청의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었어요. 당시 조선이 청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이었지요. 따라서 영은문을 허물고 그 근처에 독립문을 세웠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지금도 독립문 앞에는 영은문으로 사용된 큰 돌 두 개가 세워져 있어요.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자주 독립 국가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또한 독립 협회는 청의 사신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어주던 모화관이란 건물도 독립관으로 이름을 바꾸었어요.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게 해주는 아래 사진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지요.
복원된 현재의 독립관 건물
독립 협회는 독립관에서 정기적으로 토론회를 열어 강대국들의 횡포를 비판하고 국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어요. 당시 러시아는 우리나라에 석탄 저장소를 설치하겠다며 땅을 빌려달라고 요구하였어요. 또한 좋은 나무들을 베어가는 등 무리한 요구를 했어요.
이후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은 뒤 독립관을 강제로 없애버렸어요. 그러나 우리 민족이 나라를 다시 찾은 뒤에는 옛 독립관 건물을 다시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마침내 1997년에 현재의 목조 건물로 복원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