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의 항몽유적

새로운 고려를 볼 수 있는 진도 용장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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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화도를 떠난 삼별초는 진도의 벽파진에 내렸어요. 벽파진은 예부터 육지와 연결된 나루터가 있던 곳이에요. 조선 시대에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준비하던 곳이었어요. 물살이 빠른 울돌목에서 벽파진은 배를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는 곳이었어요.


벽파진에 내린 삼별초는 산의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용장산성을 근거지로 삼았어요. 성을 다시 정비하고, 가장 깊숙한 곳에는 개경의 만월대와 비슷하게 단을 쌓아 궁궐을 지었어요. 그리고 강화도에서 새로 모신 임금을 중심으로 새로운 조정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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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산성

진도군청




삼별초는 몽골에 항복하지 않은 고려를 내세웠어요. 그 뜻을 따라 진도를 비롯해 전라도 해안 지역과 멀리는 경상도의 남해와 거제도의 백성들에게도 호응을 얻었어요. 삼별초는 남해안 지역을 장악하며 해상왕국으로서의 위세를 널리 떨쳤어요. 멀리 일본에 국서를 보내 자신들이 고려의 정통을 이었음을 알리기도 했어요.


고려 조정과 몽골은 자신들을 부정하는 삼별초를 가만히 둘 수 없었어요. 몇 차례의 공격에도 삼별초가 꺾이지 않자 고려․몽골 연합군은 100여 척의 함선과 많은 군사를 준비하여 용장산성의 삼별초를 공격하였어요. 연합군은 군대를 세 개로 나누어 용장산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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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산성에서 몽골에 항전한 삼별초




수적으로 우세한 연합군의 기습 공격에 밀려 삼별초는 크게 패하고 말았어요. 삼별초가 새로이 세운 임금도 몽골군에 잡혀 목숨을 잃었고, 배중손도 도망을 가며 끝까지 싸우다 목숨을 잃었어요. 진도에 세워진 또 다른 고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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