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로 지어진 세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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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6월 27일(음력) 압록강을 건너 여행한지 4일째 되는 날이었어요. 연암은 크고 작은 강을 계속 건넌 끝에 청의 국경 관문인 책문(말뚝으로 만든 울타리 문)에 도착했어요.
벽돌로 지은 집에 감탄하는 박지원
국경을 넘자 연암은 충격을 받았어요. 바로 조선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벽돌 때문이었어요. 담장은 벽돌로 쌓았고, 사람 타는 수레와 짐 싣는 수레가 길을 마구 지나고 있었어요. 이곳에서 집을 지을 때 모두 벽돌을 사용하였어요. 네모 반듯한 벽돌은 기계를 이용해 편리하게 만들었어요.
“연경도 여기 시골 변두리보다 더 나을까?”
일행은 구경하다 벽돌을 쌓아 만든 우물을 발견하였어요.
“물 좀 마시고 봅시다. 잉, 우물에 뚜껑이 달려 있네.”
“그러게. 뚜껑이 있으면 사람이 빠지거나 비나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겠군. 햇볕도 막아 물도 시원하겠어.”
뚜껑에 도르래도 달아 놓아 온종일 물을 길어도 힘이 들지 않도록 하였어요. 작은 부분이지만 연암은 감동했어요.
“이런 우물 하나에도 이렇게 정성을 쏟으니 백성들이 얼마나 편할까? 우리도 어려운 학문만 할 게 아니라 백성들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을 해야 해.”
여행 15일째 7월 8일, 연암은 요양에 도착하였어요.
“눈 앞이 탁 트이더니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어.”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누비던 바로 요동 벌판이었어요. 이곳에 서니 연암은 이제야 중국 땅을 밟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난생 처음 본 지평선은 매우 큰 충격이었어요.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는 여기야말로 울기 좋은 곳이라 말했어요.
여행 17일째 되는 7월 10일에 연암은 심양에 도착하였어요. 심양은 청의 첫 번째 수도였지요. 소현 세자가 떠올랐어요. 소현 세자가 머물던 때로부터 100여년 뒤 이곳을 찾은 연암. 연암은 세자가 먼 이국에서 조선 신하들과 만나고 헤어졌을 상황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다시 울컥해졌어요.
“어떤 마음으로 머물렀고 어떻게 참았을까?”
요동 벌판을 바라보는 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