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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사(KOREAHISTORY) &amp;gt; 조선사 &amp;gt; 박지원</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parkjiwon</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박지원 (2025-05-06 23:21:3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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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암, 『열하일기』에 자신의 생각을 담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parkjiwon/6</link>
<description><![CDATA[<p>18세기 이웃 나라 청은 조선에 비해 서양과 교류가 많았어요. 과학 기술 등의 문화도 조선에 비하면 훨씬 앞서 있었지요. 때문에 조선의 선비 박지원은 청을 여행하며 깜짝 놀랄 경험들을 많이 했어요.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박지원의 시야가 세계를 향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지요.</p><p><br /></p><p>박지원은 청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글로 남겨 놓았어요. 이 기록이 바로 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오랜 세월이 흘러서까지 최고의 여행기로 꼽히는 『열하일기』에요.</p><p><br /></p><p>“벽돌로 쌓은 담장, 잘 닦여진 도로, 수레를 끌고 가는 청의 사람들처럼 우리 조선도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열하일기』를 써서 알려야겠어.”</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1260_9553.JPG" title="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1260_9553.JPG" alt="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1260_9553.JPG" /><br style="clear:both;" />열하일기</p><p>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p><p><br /></p><p><br /></p><p><br /></p><p>청에 다녀 온 후 박지원은 발달된 청의 문물을 들여와야 한다는 북학 사상을 주장하였어요. 청에서 활발하게 장사를 하는 모습, 또 다양한 규모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리고 상업과 공업이 농업보다 훨씬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조선도 상공업을 발달시켜 경제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요. 특히 그중에서도 수레의 이용을 강조하였지요.</p><p><br /></p><p>박지원이 본 새로운 세상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조선 사회는 박지원의 생각대로 변화하였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6T23:21:32+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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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침내 열하에 도착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parkjiwon/5</link>
<description><![CDATA[<p>여행 39일째 8월 1일 연암은 목적지인 북경에 도착하였어요.</p><p><br /></p><p>“황성 안에는 자금성이 있으며, 주홍색 두길 높이의 담벼락이 17리나 둘러쳐 있고, 지붕에는 금색 유리기와를 덮었다.”</p><p><br /></p><p>압록강에서부터 수차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온 2000리길.</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1124_7325.JPG" title="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1124_7325.JPG" alt="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1124_7325.JPG" /><br style="clear:both;" />연행도(자금성 태화전)</p><p>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p><p><br /></p><p><br /></p><p><br /></p><p>“큰일났습니다! 황제가 북경에 없다고 합니다.”</p><p><br /></p><p>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요? 그 먼길을 고생하며 겨우 왔는데 황제가 북경에 없다니요. 사신단에게 다시 만리장성 넘어 북쪽의 열하로 오라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연암은 고민에 빠졌어요. 한 달이 넘는 여행에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황. 하지만 만리장성 넘어 낯선 세계 열하에 대한 호기심을 거두기 어려웠어요. 다시 힘을 내자.</p><p>여행 47일째 되는 1780년 8월 9일, 드디어 열하에 도착했어요. 연암은 북경에서 북동쪽으로 무려 420리(약 164km)나 더 여행을 해야 했어요.</p><p><br /></p><p>연암이 나흘간 잠도 자지 못한 채 달려온 이곳은 청 황제의 여름 궁전이라는 ‘피서산장’이에요. 입구부터 5개 국어로 적힌 편액이 있고 자금성의 8배인 중국 최대 규모의 황실 정원이었어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지요.</p><p><br /></p><p>청 황제의 칠순 잔치는 조선 사신단 만이 아닌 티벳, 몽골, 러시아 등 동서양의 사신들이 한 자리에 모인 국제적인 잔치였어요. 난생 처음 보는 생소한 외모의 외국인과 기이한 동물들까지, 연암의 눈은 휘둥그레졌어요.</p><p><br /></p><p>조선 사신단이 하례식 절차를 밟는 동안 연암은 조선에서 본 적이 없는 청의 새로운 문물을 구경하기 바빴어요.</p><p><br /></p><p>“내 평생 기이하고 괴상한 볼거리를 열하에서 다 보았다. 안타깝다! 대부분 이름도 모르고, 글로 다 기록하지 못하니.”</p><p><br /></p><p>연암은 청이 이미 문화적으로 과학적으로 굉장히 발달한 제국이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6T23:19:0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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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번 여행에서 제일 볼만한 것은 무엇인가</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parkjiwon/4</link>
<description><![CDATA[<p>여행 30일째 되는 7월 23일, 연암은 산해관에 도착했어요. 산해관은 북경으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거대한 성문이었어요.</p><p><br /></p><p>조선에서는 볼 수 없는 압도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하지만 연암은 더 이상 단지 눈앞에 보이는 구경거리에 마음을 두지 않았어요.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조선의 선비들은 항상 이렇게 물었어요.</p><p><br /></p><p>“이번 여행에서 제일 볼만한 것이 무엇인가?”</p><p>사람들은 요동의 들판, 산해관, 길거리 상점들 등을 뽑았어요.</p><p><br /></p><p>하지만 연암의 생각은 달랐어요.</p><p><br /></p><p>“기와 조각과 똥 부스러기가 가장 볼만 했소.”</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818_1323.JPG" title="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818_1323.JPG" alt="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818_1323.JPG" /><br style="clear:both;" />연행도(산해관의 모습)</p><p>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p><p><br /></p><p><br /></p><p><br /></p><p>깨어진 기와 조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에요. 하지만 청의 사람들은 기와 조각 하나라도 그냥 버리지 않고 사용하였어요. 똥 역시 더러운 물건이지만 황금처럼 여기며 사용하였지요. 수레 또한 쓸모가 많은 물건이었어요.</p><p>“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수레를 사용하지 않을까? 길이 좁고 험하기 때문이라고? 수레가 다니면 길은 저절로 닦이는 법!”</p><p><br /></p><p>조선의 선비들은 아직 명을 섬기는 생각에만 빠져 있어 청을 오랑캐라 여기고 낮게만 보았어요. 연암은 이 모든 것이 조선 선비들의 허물이라고 생각하였어요. 선비들이 수레를 만드는 기술이나 움직이는 방법 따위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연암은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었어요.</p><p><br /></p><p>“백성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오랑캐에서 나온 것이라도 본받아야 한다. 무엇이 진정 이로운 것인지 봐야 한다.”</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6T23:14:0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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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벽돌로 지어진 세상을 만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parkjiwon/3</link>
<description><![CDATA[<p>1780년 6월 27일(음력) 압록강을 건너 여행한지 4일째 되는 날이었어요. 연암은 크고 작은 강을 계속 건넌 끝에 청의 국경 관문인 책문(말뚝으로 만든 울타리 문)에 도착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518_7584.JPG" title="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518_7584.JPG" alt="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518_7584.JPG" /><br style="clear:both;" />벽돌로 지은 집에 감탄하는 박지원</p><p><br /></p><p><br /></p><p><br /></p><p>국경을 넘자 연암은 충격을 받았어요. 바로 조선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벽돌 때문이었어요. 담장은 벽돌로 쌓았고, 사람 타는 수레와 짐 싣는 수레가 길을 마구 지나고 있었어요. 이곳에서 집을 지을 때 모두 벽돌을 사용하였어요. 네모 반듯한 벽돌은 기계를 이용해 편리하게 만들었어요.</p><p><br /></p><p>“연경도 여기 시골 변두리보다 더 나을까?”</p><p><br /></p><p>일행은 구경하다 벽돌을 쌓아 만든 우물을 발견하였어요.</p><p><br /></p><p>“물 좀 마시고 봅시다. 잉, 우물에 뚜껑이 달려 있네.”</p><p><br /></p><p>“그러게. 뚜껑이 있으면 사람이 빠지거나 비나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겠군. 햇볕도 막아 물도 시원하겠어.”</p><p><br /></p><p>뚜껑에 도르래도 달아 놓아 온종일 물을 길어도 힘이 들지 않도록 하였어요. 작은 부분이지만 연암은 감동했어요.</p><p><br /></p><p>“이런 우물 하나에도 이렇게 정성을 쏟으니 백성들이 얼마나 편할까? 우리도 어려운 학문만 할 게 아니라 백성들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을 해야 해.”</p><p><br /></p><p>여행 15일째 7월 8일, 연암은 요양에 도착하였어요.</p><p>“눈 앞이 탁 트이더니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어.”</p><p><br /></p><p>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누비던 바로 요동 벌판이었어요. 이곳에 서니 연암은 이제야 중국 땅을 밟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난생 처음 본 지평선은 매우 큰 충격이었어요.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는 여기야말로 울기 좋은 곳이라 말했어요.</p><p><br /></p><p>여행 17일째 되는 7월 10일에 연암은 심양에 도착하였어요. 심양은 청의 첫 번째 수도였지요. 소현 세자가 떠올랐어요. 소현 세자가 머물던 때로부터 100여년 뒤 이곳을 찾은 연암. 연암은 세자가 먼 이국에서 조선 신하들과 만나고 헤어졌을 상황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다시 울컥해졌어요.</p><p><br /></p><p>“어떤 마음으로 머물렀고 어떻게 참았을까?”</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607_1081.JPG" title="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607_1081.JPG" alt="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607_1081.JPG" /><br style="clear:both;" />요동 벌판을 바라보는 박지원</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6T23:10:1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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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연암, 우여곡절 끝에 압록강을 건너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parkjiwon/2</link>
<description><![CDATA[<p>박지원은 한양의 백탑 부근에 살면서 박제가, 홍대용 등과 교류하였어요. 사람들은 이들을 ‘백탑파’라 불렀어요. 연암은 이들과 함께 과거를 통한 출세보다 백성들의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였어요.</p><p><br /></p><p>그러던 중 뜻밖의 좋은 소식이 전해졌어요. 친척 중 한 명이 청의 황제 칠순 잔치 축하 사신단 대표로 임명된 것이에요.</p><p><br /></p><p>“그동안 고생했으니 넓은 세상을 보며 잠시 머리나 식히게.”</p><p><br /></p><p>“고맙습니다, 형님. 그렇지 않아도 청에 꼭 가고 싶었는데”</p><p><br /></p><p>연암에게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중국 여행의 기회가 찾아 왔어요. 연암은 왜 청에 가고자 하였을까요? 이제 연암 박지원과 함께 청으로 가는 길을 떠나 볼까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093_823.JPG" title="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093_823.JPG" alt="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40093_823.JPG" /><br style="clear:both;" />박지원의 연행길</p><p><br /></p><p><br /></p><p><br /></p><p>연암 박지원은 여행 준비에 가슴이 설레었어요.</p><p><br /></p><p>“말안장에 주머니 한 쌍을 달아서 왼쪽은 벼루, 오른쪽은 거울, 붓 두 자루, 먹, 작은 공책 네 권, 여행 지도를 넣자.”</p><p><br /></p><p>초여름 무더위 속에 여행은 시작되었어요. 출발부터 만만치 않았지요. 처음으로 길 들판에서 잠도 자고, 비와 맹수 소리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어요. 의주에 도착하였지만, 아직 압록강도 건너지 못하고 있었지요.</p><p>“장마로 강물은 불고 물살은 거세어 강을 건너지 못합니다.”</p><p><br /></p><p>오늘은 강을 건널 수 있을까? 걱정은 되었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해서라도 강을 건너야 할 형편이었어요. 일행은 우여곡절 고생 끝에 청으로 떠나는 배에 올라 거센 물살을 뚫고 강을 건넜어요. 마침내 한양을 떠난지 한 달 만에 압록강을 건넌 것이지요.</p><p><br /></p><p>지금이야 단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중국이지만, 박지원이 살았던 시대에는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일이었어요. 갈 길은 멀고, 날은 덥고, 갑자기 후회가 연암에게 밀려왔어요.</p><p><br /></p><p>“왜 나는 굳이 이런 힘든 여행길을 나선 것일까?”</p><p><br /></p><p>사실 연암은 이미 청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글들을 통해 더 큰 세상이 있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박지원은 청을 잘 배우고 이용하면 조선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였지요.</p><p><br /></p><p>“그래! 조선보다 수십 년 앞선다는 청의 발전된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빠짐없이 보고 오리라.”</p><p><br /></p><p>연암은 다시한번 마음을 다지고 여행길에 힘을 내었어요.</p><div><br /></div>]]></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6T23:01:5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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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연암 박지원, 열하까지 다녀오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parkjiwon/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39808_6677.JPG" title="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39808_6677.JPG" alt="7c231a4920574140a9f2c72d20ca05c0_1746539808_6677.JPG" /><br style="clear:both;" />연암물레방아공원(경남 함양군)</p><p><br /></p><p><br /></p><p><br /></p><p>“자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열하일기』라는 책을 읽어 보았는가?”</p><p><br /></p><p>“물론이네. 한양에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놀랍더군. 난 이 책을 읽고 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네.”</p><p><br /></p><p>“그나저나, 이 책을 쓴 박지원은 대단하지 않은가? 그 먼 열하까지 직접 다녀와 책을 썼다니 말일세.”</p><p><br /></p><p>박지원은 왜 당시 청의 수도인 연경(북경)까지 가서, 또 열하까지의 먼 길을 갔을까요? 또 『열하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6T22:57:10+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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