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신령이 조화를 이룬 행사, 팔관회와 연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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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건국 이야기가 담긴 『삼국유사』에는 하늘님의 자손 환웅과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죠. 태백산, 신단수(나무)와 같은 자연물도 등장해요. 선사 시대 사람들은 무서운 동물부터 하늘, 산, 강, 바다 등 두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대상을 신으로 모셨어요.
신에 의지하면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인 배고픔과 질병, 전쟁과 자연재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이렇듯 자연의 여러 신을 믿고 모시는 종교를 무속 신앙이라고 해요.
부족장이나 임금은 일 년이 끝나갈 무렵이나 시작할 무렵에 백성들을 한곳에 모아 하늘에 제사를 지냈어요. 제사장이 이끄는 제사를 통해 일 년을 무사히 지낸 것에 감사하고, 새해에도 풍년이 들어 백성들의 삶이 평안하기를 기원했어요. 하늘을 향한 제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함께 음식과 술을 나눠먹고 춤을 추며 어울렸어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삼국 시대에도 계속되었어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모두 시조가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나라 행사였어요. 제사가 끝나면 제사 음식을 나눠먹고, 나라의 곳간을 열어 모든 백성이 배불리 먹게 하였어요. 며칠 동안 밤늦도록 백성들은 음악과 춤을 즐겼어요.
삼국 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불교가 들어오면서 그 모습이 달라졌어요. 신라 진흥왕은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 이름이 팔관회였어요.
팔관회는 원래 불교 신자들이 절에 가서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여덟 가지 계율을 지키는 행사였어요. 그러나 진흥왕은 불교 행사와 제사를 결합해 죽은 병사들과 그의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나라 행사로 팔관회를 열었어요. 부처의 가르침은 많은 전쟁으로 상처 입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었어요.
신라의 팔관회는 화랑에 속한 승려가 중심이 되어 이끌었어요. 행사장에는 큰 무대를 만들었고, 화랑과 낭도들로 구성된 악대가 음악을 연주했어요. 배에 용과 봉황, 코끼리, 말이 타고 있는 모습으로 꾸민 수레를 중심으로 화려한 춤과 음악, 곡예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어요.
제사와 불교 의식이 결합된 삼국 시대의 팔관회 모습은 고려에도 그대로 이어졌어요. 태조 왕건은 팔관회를 “하늘, 산, 강의 신과 바다의 용신을 섬기는 것”이라 말했어요. 이것은 팔관회가 불교 의식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전부터 이어온 무속 신앙의 여러 신령들을 함께 모시는 나라의 중요 행사임을 분명히 한 것이죠.
팔관회는 일 년이 끝나갈 무렵 개경과 서경(평양)에서 열렸어요. 팔관회가 열리면 국왕과 중앙 관리뿐만 아니라 지방의 여러 사람들도 개경에 올라와 참석했어요. 여진족 추장과 탐라의 대표, 송 상인과 아라비아 상인도 참석해 축하 편지와 선물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팔관회로 개경에 모인 여러 나라 사람들
개경의 궁궐 위봉루 앞마당에서는 선랑을 중심으로 여러 신들을 기쁘게 하는 춤과 음악 공연이 펼쳐졌어요. 곡예사들의 재주놀이도 함께 공연되었어요. 공연은 무대 가운데에 설치한 바퀴모양의 등(윤등)에 불을 밝히고 밤늦게까지 계속되었어요. 등불과 횃불로 불을 밝힌 개성의 거리에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축제를 즐기며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어요.
고려 시기 가장 중요한 나라 행사였던 팔관회는 조선이 세워지고 유교가 강조되면서 바로 폐지되었어요. 하늘, 산, 강의 신과 바다의 용신을 모시던 풍습도 금지되었어요. 나라에서는 유교식으로 조상신을 모시는 제사를 지냈어요.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여전히 산신제나 용왕제라는 마을 제사를 통해 자연의 신을 모시면서 마을의 풍요와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했어요.
삼국 시대 불교가 들어오면서 생겨난 풍습에는 팔관회와 함께 연등회가 있어요. 부처님에게 등을 바치는 연등회는 등불을 밝혀 자신의 마음을 밝게 하고, 부처의 뜻으로 세상이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행사였어요.
삼국 시대에 시작된 연등회는 처음에 한해가 시작되는 정월 대보름(또는 2월 보름)에 열렸어요. 사람들은 대나무와 종이로 등을 만들어 성문과 큰길가에 매달았어요. 밤에는 등에 불을 켜 성안을 대낮같이 밝혔어요. 국왕과 왕족, 그리고 신하들은 절에서 태조 왕건에게 제사를 지냈어요. 다음날 성에 수만 개의 연등이 밝혀져 있는 모습을 구경하며 잔치를 열었어요.
백성들도 절에 가서 향을 피우고 그해의 복을 빌었어요. 그리고 궁궐 위봉루 앞의 무대에서 공연되는 춤과 음악, 곡예를 구경했어요. 전국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갖가지 특산품과 진기한 물건들을 가져와 임시 시장이 열렸어요. 백성들은 밝은 등불 아래 성안을 돌아다니면서 밤새도록 연등회를 즐겼어요.
2월 보름에 열리던 연등회는 고려 중반에는 부처님이 태어난 날(사월 초파일)에도 열렸어요. 조선이 세워지자 2월 보름에 열리던 연등회는 폐지되었어요. 반면에 사월 초파일 연등회는 일반 백성들을 중심으로 사월 초파일 연등놀이로 계속되었어요.
연등과 영등(주마등), 필룩스 조명박물관
조선 시대 사월 초파일 연등놀이는 행사 며칠 전부터 준비가 시작되었어요. 민가와 관청, 시장, 거리의 집집마다 대나무에 등을 쭉 매달아 묶어세우고 오색 비단으로 꾸몄어요. 등은 학, 잉어, 거북, 오리, 연꽃 등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밤이 되면 늘어선 연등에 불을 붙여 세상을 밝혔어요.
연등 중에는 영등(주마등)도 있었어요. 두 겹으로 만든 등 안쪽에 여러 그림 조각을 붙이고 회전하게 만들었어요. 등 가운데에 촛불을 켜면 바깥쪽 등에 움직이는 그림자가 생겼어요. 그림자는 주로 말을 탄 사람이 호랑이나 사슴을 사냥하는 모습으로 만들었어요. 등이 회전을 하면 사냥꾼이 짐승을 쫓는 모습의 움직이는 그림자에 사람들은 매우 신기해했어요.
사월 초파일 밤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사람들은 도성 밖 절에 가서 참배를 하였어요. 그리고 산에 올라 형형색색의 등불을 구경하고 밤새도록 성안을 돌아다니면서 떠들썩하게 놀았어요. 아이들도 등불 밑에 앉아 떡과 볶은 콩을 먹으며 여럿이 함께 놀이를 즐겼어요.
이전부터 내려온 자연 속의 여러 신을 모시던 무속 신앙과 새로 전래된 불교 신앙이 합쳐 만들어진 팔관회와 연등회는 고려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아주 큰 나라 축제였어요. 그러나 불교보다 유교를 더 중시한 조선 시대에는 금지되며 크게 쇠퇴하였어요.
다만 일반 백성들을 중심으로 마을 제사나 사월 초파일 행사로 계속 되었어요. 지금도 사람들 속에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 뜻은 계속되어 ‘석가탄신일’에 절이나 지역 축제를 통해 이어지고 있어요.
연등 행렬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