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독립을 위한 또 다른 노력, 물산 장려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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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을 빼앗긴 후 일제의 많은 공산품이 수입되어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 갔어요. 일제 물건이 많이 팔릴수록 우리 민족 기업은 망하거나 힘없이 근근이 버틸 수밖에 없었죠.
“우리가 입은 옷, 먹는 음식, 사용하는 물건 중에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맞소! 우리 집과 땅과 몸뚱이까지 팔아 우리가 쓰는 물건을 일본에게서 받아쓰니 한스러울 뿐입니다.”
“우리가 사용할 것을 스스로 만들어 쓰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1919년 대대적으로 전개된 3·1 운동이 결국 실패로 끝나면서 민족 지도자들은 우리 민족의 힘을 키울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꼈어요. 그중 경제 자립을 위해 일제상품 불매운동과 우리상품 애용운동을 벌였는데, 그것이 바로 물산 장려 운동이에요.
물산 장려 운동 광고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물산 장려 운동은 1920년대 초에 조만식을 중심으로 평양에서 시작되었어요. 이들은 우리 상품을 많이 사고 근검절약을 하면 민족 산업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선물산장려회를 만들어 널리 알렸어요.
평양에서 시작된 물산 장려 운동은 종교계, 교육계 지식인들은 물론 상인, 기업인들도 크게 환영하였어요. 국채 보상 운동 때와 같이 전국 각지에 조선물산장려회 지부를 만들고, 신문을 통해 국민들에게 널리 홍보하였어요. 강연회나 거리행진을 통해 홍보하기도 했어요.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
조선물산장려회는 무명으로 만든 옷을 입을 것과 외국 상품의 사용을 줄이고 국산품을 사용할 것을 국민들에게 요청하였어요. 국민들의 반응은 뜨거웠어요. 국채 보상 운동 때와 같이 너도나도 국산품을 쓰려 노력했어요.
그러나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국산품을 쓰려고 하자 문제가 생겼어요. 우리 민족 기업들의 기술이나 생산 능력이 부족해 국민이 원하는 만큼의 물건을 생산하지 못한 것이죠. 물건의 양이 부족해지자 물가가 크게 올랐어요. 일제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자급자족을 통한 경제독립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실제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 뜻만은 높이 평가할 수 있겠지요.
1997년 IMF 외환 위기처럼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계 속에서 경제 위기는 또 일어날 수 있어요. 경제 문제로 나라의 독립이 좌지우지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역사 속 조상들의 모습 속에서 그 답을 찾아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