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유적

국채 보상 운동에 참여한 다양한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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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서를 대한매일신보에 실어 세상에 알린 대동광문회는 담배를 끊자는 의미의 단연회를 만들어 모금 운동에 나섰어요. 그리고 대구 북후정(지금의 대구 시민 회관 자리에 있던 정자)에 사람들을 모아 군민 대회를 열고 자신들의 뜻을 알렸어요.


군민 대회와 함께 시장에서 장사하던 짚신장수, 콩나물장수, 밥장수, 떡장수 등 많은 상인들이 앞 다투어 의연금을 냈어요. 바느질로 근근이 생활하던 아낙네도 반지를 팔아 그 돈으로 의연금을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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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대회가 개최된 북후정 자리에 세운 국채 보상 운동 기념비


의연금을 낸 가난한 국민들의 의로운 이야기가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신문과 잡지에 매일 매일 실렸어요. 나무와 짚신을 팔아 3원을 낸 어린 나무꾼, 40전을 낸 백정, 발로 뛰어 번 3원 4전을 낸 인력거꾼, 어른들로부터 받은 세뱃돈을 모아 낸 아이들, 심부름 값을 모아 의연금을 낸 고아원의 아이들. 가난하지만 온 정성을 다해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작은 노력들이 신문에 실려 전국으로 퍼져 나갔어요.


가난한 국민들의 의로운 뜻에 고종 황제도 담배를 끊고 운동에 동참하였어요. 관리와 군인, 선비, 종교인 등 너나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국채 보상 운동에 함께 했어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데 남녀노소, 빈부, 종교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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