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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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은 물러갔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많은 양의 공물은 고려에 큰 부담이 되었어요. 다루가치의 횡포도 점점 더 심해졌지요. 당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인 최우는 몽골의 간섭이 자신의 자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신하들과 함께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는 문제를 논의했어요. 최우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자고 했지만, 대다수 신하들은 수도를 옮기지 말고 개경에서 몽골과 싸우자고 했어요.
“개경을 지키지 않고 섬으로 도망가서 시간만 끌면 백성들이 몽골군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끌려가 노비가 될 것입니다. 강화도 천도는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개경은 태조 왕건 때부터 300년 넘게 지켜온 수도입니다. 성이 견고하고 군사와 양식이 풍족하므로 개경에서 힘을 합쳐서 몽골군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화가 난 최우는 강화도 천도를 반대한 신하들을 죽이기까지 했어요. 이런 모습을 본 신하들은 더 반대하지 못했어요. 고종도 수도를 옮기는 일을 주저했지만 어쩔 수 없이 허락했어요. 최우는 왕과 관리, 개경의 백성들을 강화도로 옮겨 가도록 했어요. 한편 지방의 백성들에게는 각자 알아서 섬으로 가거나 산성에 가서 숨으라고 했어요. 국가의 최고 권력자로서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까요?
강화도로 옮겨가는 개경의 백성들
고려는 왜 수도를 섬인 강화도로 옮겼을까요? 역사학자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어요.
첫째, 고려 정부는 몽골군이 해전에 약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유목 민족인 몽골은 기병 전술에는 매우 강했지만, 상대적으로 바다에서 싸운 경험은 부족했지요. 지금은 강화도가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만, 당시는 물살이 센 바다를 배로 건너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둘째, 강화도는 전국 각지에서 걷은 세금을 받기가 쉬운 곳이었어요. 당시 세금이 최종적으로 모이는 곳은 수도 개경인데, 강화도는 개경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거든요. 따라서 수도가 강화도에 있으면 예전처럼 세금을 쉽게 거둘 수 있었지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후 궁궐도 새로 지었어요. 당시 궁궐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그 터는 지금까지 남아서 ‘고려궁지’, ‘고려궁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답니다.
강화도의 고려시대 유적
강화군청,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