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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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으로 출정한 고려군은 5월 압록강 하구의 작은 섬 위화도에 이르렀어요. 이때 장맛비가 계속 내렸어요. 이성계는 장맛비를 이유로 군대를 돌릴 것을 우왕에게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러자 이성계는 함께 간 조민수를 설득하여 군대를 개경으로 돌렸어요. 마침내 정변을 일으킨 것이지요.

이성계가 정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최영은 개경에 남은 소규모의 군대로 이성계에게 맞섰어요. 그러나 결국 이성계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말았죠. 사로잡힌 최영은 귀양을 가 처형을 당하고 말았어요. 우왕도 폐위되었고, 이성계는 그의 아들 창왕을 새로운 왕으로 세웠어요. 하지만 창왕도 곧 폐위되었고, 공양왕이 왕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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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




고려의 많은 문제들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정몽주는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며 반대를 했지요. 이때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와 함께 새로운 나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부하를 시켜 한 밤중에 정몽주를 죽이고 말아요. 그 현장이 선죽교라고 전해지고 있어요.


고려 왕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가 죽자 더 이상 고려에 이성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곧 이성계는 정몽주를 따르는 무리를 귀양 보냈고,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아 왕이 되었어요.


왕이 된 이성계는 처음에는 고려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했으나 곧 ‘조선’이라 바꿉니다. 새로운 나라 조선이 세워진 것이지요.


고려 말기의 여러 혼란스런 상황을 극복하며 이성계는 성장하였고, 정변을 거치면서 새로운 왕이 되었어요. 그는 새로운 나라 조선을 건국했고, 도읍지도 새로 정했지요.


새 도읍지 건설의 총책임자인 정도전은 백악산(북악산) 밑에 경복궁과 여러 관청들이 모여 있는 6조 거리를 만들었어요.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종묘를 서쪽에는 사직을 세웠어요. 그리고 도읍의 이름을 ‘한양’이라 했어요.

1394년 이성계와 그의 신하들은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경을 떠나 조선의 새 도읍지인 한양에 도착했어요. 500년 조선의 역사가 수도 한양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왕이 된 이성계는 조선을 세웠어요. 조선은 고려와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조선은 백성들이 살기에 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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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과 6조 거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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